웨일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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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공의 기장

웨일스 공(Prince of Wales)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왕자에게 주어지는 작위 중 하나로, 웨일스군주와 영국의 왕세자를 의미한다. 14세기부터 다음 국왕으로서 왕위를 계승할, 잉글랜드 국왕(나중에는 그레이트 브리튼 국왕)의 가장 나이가 많은 왕자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2012년 현재의 웨일스 공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맏아들인 찰스 왕세자이다.

웨일스 공을 ‘’이라고 번역하게 된 것은 Principality of Wales를 웨일스 공국(公國)이라 번역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공작(Duke)이라는 작위로 볼 수는 없다. 또, 웨일스 공 보다 ‘왕세자’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일본에서 웨일스 공의 칭호를 얻은 제1왕위계승자를 ‘영국 왕세자’라고 부르던 것이 건너온 것으로 사료된다.

다만, 웨일스 공을 '웨일스 왕자'라고 부르는 것이 오역이라는 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는 남쪽에 있는 웨일스 왕국을 침공하여 병합한다. 그 뒤 통합의 상징으로 잉글랜드 왕의 장남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시점은 에드워드 3세부터이다. 물론 이 호칭은 웨일스인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국 왕(여왕)의 후계 1순위 남자에게는 자동적으로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는 호칭이 붙었다. 비록 혈통상으로는 웨일스의 왕자가 아니라 잉글랜드의 왕자지만,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흡수된 이후로는 '웨일스 왕자'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또한 잉글랜드 왕의 방계나 다른 집안의 아들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자리에 앉혔다면 '왕자'라는 표현보다는 '공(公)'이 더 어울리겠지만, 잉글랜드 왕의 직계 1순위 아들에게 준 지위이므로 왕자라는 말은 틀리지 않다.

영국 왕세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칭호는 웨일스 공 말고도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 등이 있다(반드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원[편집]

이 칭호는 귀네드 지방의 웨일스인 제후였던 르웰린 압 그루피드가 거의 전 웨일스 지역의 웨일스 인 제후들에게 지배력을 뻗치게 되면서, 1258년, 전 웨일스의 군주임을 의미하는 웨일스 공(프린스 오브 웨일스: 웨일스의 지배자)이라고 스스로 칭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웨일스 제후들의 명목상의 주군이었던 잉글랜드 왕 헨리 3세1267년, 르웰린을 웨일스 공으로 승인하면서 이때 웨일스 공국(Principality of Wales)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헨리 3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이 된 에드워드 1세는 러웰린과 대립하면서 1282년부터 1283년에 걸쳐 웨일스를 침공하게 되며, 르웰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의 동생인 다비드를 처형하면서 웨일스 공 일족을 멸족시켰다.

에드워드 1세는 르웰린이 만든 웨일스 공의 황금 관을 잉글랜드로 가지고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치하고, 웨일스 공국을 잉글랜드 왕령으로 정하고 귀네드를 비롯한 웨일스 제후령을 모두 빼앗아 웨일스 공국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왕궁 소유지는 귀네드의 카나번(Caernarvon) 성으로 정했고, 1284년에 에드워드 1세의 아들 에드워드(에드워드 2세)가 태어났다.

1301년,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 인들의 반란을 억누르기 위해 왕자인 에드워드(2세)에게 웨일스 공의 칭호를 내리며 명목상 웨일스의 군주로 삼았다. 처음부터 웨일스 인에게 에드워드 2세를 웨일스 태생의 지배자로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임신중이던 왕비를 당시 웨일스 침공의 전선기지였던 커나븐 성까지 데려가 왕자를 출산시켰던 것이다.

후에 에드워드 2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1343년에 자신의 장남이며 제1왕위계승자인 에드워드에게 웨일스 공의 칭호를 내리며, 장남이 잉글랜드의 왕위를 잇기 전에 사망하면서 칭호를 다음 왕위계승자가 될 장남의 차남 리처드에게 넘긴다. 이렇게 잉글랜드에서 다음 국왕이 될 자가 웨일스 공이 되는 관례가 정착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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