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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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출생 1820년
이탈리아의 국기 이탈리아 피렌체
사망 1910년
영국의 국기 영국 런던
사인 병사
국적 영국의 국기 영국
별명 램프를 든 천사
학력 독일에서 간호사 수업
직업 간호사
종교 성공회
부모 부친은 윌리엄 에드워드 나이팅게일, 모친은 프랜시스 나이팅게일
친척 언니 파시노프 나이팅게일
이 글은 간호사에 관한 것입니다. 새에 대해서는 나이팅게일 글을 참조하십시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년 ~ 1910년 8월 13일)은 영국간호사, 작가, 통계학자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피렌체에서 윌리엄 에드워드와 프랜시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플로렌스라는 이름은 피렌체의 영어 지명이다. 플로렌스의 위에 언니 파시노프가 있었는데, 이 이름도 나폴리(파시노프의 출생지)의 그리스식 지명이다.

플로렌스는 잉글랜드 햄프셔 주의 엠블리와 더비셔 주의 리 허스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진보 지식인인 아버지와 가정교사에게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지리학등의 다양한 학문을 어릴때부터 익힐 수 있었다. 인도주의자인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가난한 이웃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나이팅게일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사를 런던 타임스 신문에서 읽은 뒤 자극받아, 집안의 명예실추를 우려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에서 간호사 수업을 받았다.

크림 전쟁(1854년-1856년) 당시 38명의 성공회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간호사로 활동하였다.1860년 나이팅게일 간호 학교(현재 킹스 칼리지 런던의 일부)를 설립하고 간호전문서적을 씀으로서 조선의녀처럼 천대받던 직업인 간호사를 전문직업으로 성숙시키는 업적을 남겼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이스트웰로에 매장되었고, 묘비에는 'F.N. 1820년에서 1910년까지 생존'이라고 간략히 기재되었다.이는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지말라는 나이팅게일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나이팅게일이 일한 세쿠타리 병원. 나이팅게일과 38명의 성공회 수녀들의 헌신으로 환경이 개선되었다.
나이팅게일이 열병치료를 마치고 세쿠타리에 돌아온 모습을 그린 그림. 제리 바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