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 출생 | 1942년 1월 8일 (71세) |
|---|---|
| 국적 | |
| 분야 | 이론물리학 |
| 소속 | 케임브리지 대학교 |
| 출신 대학 | 옥스퍼드 대학교 |
| 주요 업적 | 호킹-펜로즈 특이점 정리(Hawking–Penrose singularity theorem) 호킹 복사 하틀-호킹 상태(Hartle–Hawking state) |
| 수상 | 특별 기초물리학상 (2012) |
| 종교 | 없음(무신론자) |
| 루게릭병을 앓아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 | |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CH, CBE, FRS, 1942년 1월 8일~)은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로 재직한 영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특히 블랙홀이 있는 상황에서의)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자신의 이론 및 일반적인 우주론을 다룬 여러 대중 과학서를 저술했다. 그 중 시간의 역사는 런던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고기록인 237주 동안 실렸다.
호킹은 스물한 살 때부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앓아 현재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중요한 과학적 업적으로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상대론적 특이점에 대한 여러 정리를 증명한 것과 함께, 블랙홀이 열복사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있다(이는 호킹 복사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로 불린다.). 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이다.
목차 |
생애 [편집]
학창시절 [편집]
스티븐 호킹은 1942년 1월 8일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지 300주년이 되는 날 태어났다. 10대 시절 그는 친구들과 초감각 지각(ESP, extra sensory perception)을 실험하고 LUCE와 같은 원시적 컴퓨터를 만드는 등 과학에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미 과학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기에 과학자로서의 삶은 정해진 길이었으나 전공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었다. 의사인 아버지와 달리 생물학에는 큰 관심을 보지 않았고 물리학을 '모든 과학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수학에 대한 애정 또한 컸기에 쉽게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모교인 옥스포드 대학에 자식을 보내고 싶어했고 당시 옥스포드 유니버설 칼리지에는 수학전공이 없었기에 1959년 10월 17살의 나이로 그는 옥스포드 대학 물리학과를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3년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우주론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루 게릭병 판정과 극복 [편집]
스티븐 호킹은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2살 때, 근육 및 신경계 난치병인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 게릭병) 진단을 받고 살 날이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의사들의 이같은 예상은 여지 없이 빗나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탓에, 공식을 종이 따위에 써내려 가며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물리학 및 수학의 여러 복잡한 공식을 일일이 암기하여 계산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능력이어서 동료 연구원들은 스티븐 호킹의 이러한 재능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이후 연구 활동 [편집]
호킹은 32살이던 1974년 5월 2일 왕립 학회에 역사상 가장 젊은 회원으로 추대된다. 왕립 학회에는 새로 선출된 회원들이 직접 걸어나가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걷기는 물론 글씨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스티븐에게는 참 힘든 일이었고 당시 노벨 생물학상 수상자이자 학회장이었던 엘런 호드킨이 명부를 밑으로 가져 가고 스티븐이 힘겹게 서명을 하자 우레와 같은 갈채가 터져 나왔다. 스티븐 호킹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 학설을 내놓았으며, ‘특이점 정리’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 등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였고, ‘양자중력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 1962년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준비를 하고 있던 1963년, 몸속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어 전신이 뒤틀리는 루게릭병(근위축증)에 걸렸다는 진단과 함께 1∼2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의 학문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 우주물리학에 몰두하여 1973년 ‘블랙홀은 검은 것이 아니라 빛보다 빠른 속도의 입자를 방출하며 뜨거운 물체처럼 빛을 발한다’는 학설을 내놓아, 블랙홀은 강한 중력을 지녀 주위의 모든 물체를 삼켜버린다는 종래의 학설을 뒤집었다.
1974년 영국왕립학회 회원이 되고, 1979년 뉴턴·디랙에 이어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시언 석좌교수(碩座敎授)가 되었다. 1985년 폐렴으로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가슴에 꽂은 파이프를 통해서 호흡을 하고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통해서 대화를 하여야만 했다.
그는 이와 같은 삶의 연장과정에서 ‘특이점(特異點) 정리’ ‘블랙홀 증발’ ‘양자우주론(量子宇宙論)’ 등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였고, 세계물리학계는 물리학의 계보를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그를 꼽게 되었다.
그는 계속 미시(微視)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量子力學)과 거시(巨視)의 세계인 상대성이론을 하나로 통일하는 통합이론인 ‘양자중력론’ 연구에 몰두하였다. 1990년 9월 휠체어에 탄 채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대학 등에서 ‘블랙홀과 아기우주’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저서 [편집]
- 1988년 《시간의 역사》 ISBN 89-7291-405-3
- 1997년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ISBN 8972911585
- 2001년 《호두껍질 속의 우주》 ISBN 89-7291-301-4
- 2010년 《위대한 설계》
수상 내역 [편집]
- 1975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에딩턴 메달
- 1975년 로마 바오로 6세 피우스 3세 메달
- 1976년 영국 왕립학회 휴즈메달
- 1982년 영국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
- 1985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골드 메달
- 1988년 이스라엘 울프 재단 울프 물리학상
- 1989년 영국 컴패니언 오브 아너(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CH)
- 1999년 미국 줄리어스 에거드 릴리엔펠트상
- 2002년 아벤티스 과학 서적상(《호두껍질 속의 우주》)
- 2009년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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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의 웹사이트
- (영어) O’Connor, John J.; Edmund F. Robertson (2009년 9월). Stephen William Hawking.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 (영어) Stephen William Hawking. 《The Mathematics Genealogy Project》. North Dakota State University,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
- (영어) 스티븐 호킹 -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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