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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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 | 1955년 4월 7일~1957년 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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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윈스턴 처칠(제44대)
후임: 해럴드 맥밀런(제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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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적 | |
| 출생일 | 1897년 6월 12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1977년 1월 14일 (79세) |
| 사망지 | |
| 정당 | 보수당 |
| 학력 | 옥스퍼드 대학교 |
| 종교 | 영국 성공회 |
| 배우자 | 베아트릭스 베켓 클래리사 이든 |
앤서니 이든 백작(Robert Anthony Eden, 1st Earl of Avon, KG, 1897년 6월 12일~1977년 1월 14일)은 영국의 정치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회에 진출하였다. 1935년 이후 3번이나 외무장관이 되었으며, 1955년 처칠의 뒤를 이어 보수당을 이끌고 총리를 지냈다. 이때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한 프랑스와의 협정에서 영국의 정책 결정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57년 이집트 침공의 실책으로 사임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의 독립문제가 연합국 지도자들 사이에서 최초로 논의된 것은 1943년 3월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국무장관 코델 헐이 워싱턴에서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앤서니 이든과 가진 회합 때였다. 이때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한반도를 일정 기간 동안 미국, 중국 및 소련 등 3국의 '신탁통치'아래 두었다가 독립시킨다."는 의견을 처음으로 밝혔으며, 이든은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1]
서훈 [편집]
주석 [편집]
외부 연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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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윈스턴 처칠 |
영국의 총리 1955년 - 1957년 |
후 대 해럴드 맥밀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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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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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 제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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