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불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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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불가닌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улга́нин, 1895년 3월 30일 – 1975년 2월 24일) 은 국방장관과 총리를 역임한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이다. 그는 군 경력은 없었으나 독소전쟁 기간 중 소련 정부의 행정을 책임져서 소련의 승리에 기여했고, 소비에트 연방 원수의 계급을 받았다.

이력[편집]

생애 초기[편집]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7년 볼세비키 에 가담하고, 1918년 체카에 들어가서 1922년까지 근무했다. 러시아 내전이후, 불가닌은 전력 공급을 책임진 산업관리원이 되었고, 1927-1931년에는 모스크바 전력 공급부의 감독자가 되었다. 1931년부터 1937년까지 불가닌은 모스크바 시(市)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의장이 되었다.

관료 생활[편집]

1934년 소련 공산당의 제17차 당대회에서 불가닌은 당 중앙위원회의 후보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불가닌은 스탈린에 충성을 다했고, 그리하여 대숙청을 무사히 넘겼다. 당시 숙청된 고위직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숙청에서 살아남은 하급 관리들에 대한 대폭적인 승진이 실시되었는데, 불가닌도 이를 통해 빠르게 승진했다. 1937년 7월에는 소련을 이루는 공화국들 중 가장 큰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총리가 되었고, 다음해에는 중앙위원회의 정위원이 되었다. 또한 이 해에 소련 부총리(총리는 스탈린)에 올랐고, 소련 국가 은행의 총재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때 불가닌은 정부 행정을 책임졌다. 전선 지휘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지만, 군인으로서 상급대장의 계급을 받았고, 국방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1944년 국방장관 대리가 되었으며, 붉은 군대 최고사령부에서 스탈린의 대리자로서 일했다. 이 공적으로 1946년 소비에트 연방 원수 계급을 받았고, 당 정치국의 후보위원이 되었다. 1947-1950년에는 다시 소련 부총리를 역임하였다. 1948년 정치국의 정위원이 되었다.

스탈린 사후[편집]

1953년 3월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불가닌은 국방장관으로서 소련 지도부의 첫 번째 유력한 자리에 있었다. 그는 흐루쇼프와 연합하여 말렌코프와 권력투쟁을 벌였고, 1955년 2월에는 말렌코프를 밀어내고 소련 총리에 올랐다. 불가닌은 대체로 흐루쇼프의 개혁정책과 스탈린 격하 운동에 동조하는 것처럼 비쳐졌으며, 흐루쇼프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7년 몰로토프가 주도한 반흐루쇼프 운동(이른바 “반당(反黨)그룹”)에 참여하여 흐루쇼프를 권력에서 밀어내려고 하였다. 불가닌은 일관되지 못하게 흐루쇼프와 반당그룹 사이에서 왔다갔다했고, 흐루쇼프는 반당그룹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했다. 불가닌은 당분간 총리 자리를 유지하지만, 1958년 바로 흐루쇼프의 강요로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다시 20년전에 맡았던 소비에트 국가 은행의 총재에 임명되었으나, 계속 권력과는 멀어졌고, 정치국에서 밀려나고, 원수의 계급도 박탈되었다. 이후 세바스토폴의 경제위원회의 의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는 거의 실권이 없는 자리였다.

만년[편집]

1960년 2월 은퇴했고, 이후 연금생활자로 살았다. 이후 15년간 모스크바에서 별다른 활동없이 조용히 살다가 사망하였다.

함께 보기[편집]

전 임
이오시프 스탈린
소비에트 연방국방부장관
1947년 3월 3일 - 1949년
후 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전 임
게오르기 말렌코프
소비에트 연방총리
1955년 - 1958년
후 임
니키타 흐루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