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프리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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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예브게니 막시모비치 프리마코프 (러시아어: Евгений Максимович Примаков, 1929년 10월 29일 ~ )는 러시아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그의 긴 경력 동안, 러시아의 외무부 장관, 러시아의 총리, 소비에트 최고회의연합 위원회의 마지막 의장, 정보원장[1]으로 재임하였다. 프리마코프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자이자 최고 회의 간부회의 회원이다.

목차

초기 삶 [편집]

프리마코프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태어나서, 그루지야의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성장했다. 프리마코프의 가계와 초기 어린시절은 분명치 않으며, 어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도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알려진바가 없다. 그의 아버지는 억압받았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프리마코프가 입양된 아이였다라는 미디어의 추측이 있었다. 그는 1953년에 졸업한 모스크바 동양학대학에서 교육받았으며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대학원 수업을 받았다. 1956년에서 1970년까지, 그는 소비에트 라디오의 저널리스트와 프라우다 신문의 중동 특파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코드명 MAKSIM이란 이름으로 국가보안위원회 첩보원 (co-optee)로서 중동미국에 정보 임무를 띄고 종종 보내졌다.[2][3]

초기 정치 경력 [편집]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 연구소의 상급 연구원으로서, 프리마코프는 1962년에 과학회에 입문했다. 1970년 12월 30일부터 1977년까지, 그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 연구소의 차장으로 재임했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그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 동양학 연구소의 이사였다. 또한 이 시기 동안 그는 소비에트 평화위원회, 국가보안위원회 외국 선전 전선 기구의 초대 부의장이었다.[4] 1985년에 그는 세계 경제와 국제 관계 연구소로 돌아와 1989년까지 이사로 재임하였다.

프리마코프는 1989년에 두 소비에트 의회 중 하나인, 연합 위원회 의장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그는 소련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대통령 위원회 구성원이었다. 그는 걸프 전쟁의 전단계에 있어 고르바초프의 이라크 특사로서 재임하였으며, 사담 후세인과 면담을 하였다. 1991년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이후, 프리마코프는 최초로 국가보안위원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되어 국가보안위원회의 정리를 맡았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세워진 이후, 프리마코프는 해외정보국의 원장으로 임명되어,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재임하였다.

외무장관 시절 [편집]

국무총리 시절 [편집]

국회의원 시절 [편집]

참고 [편집]

  1. Ion Mihai Pacepa, A Terrorist State in the G8?, Human Events, December 3, 2007
  2. Christopher Andrew and Vasili Mitrokhin, The Mitrokhin Archive: The KGB in Europe and the West, Gardners Books (2000), ISBN 0-14-028487-7
  3. Vadim J. Birstein. The Perversion Of Knowledge: The True Story of Soviet Science. Westview Press (2004) ISBN 0-8133-4280-5
  4. MN File, The Moscow News, No. 18 2007

바깥 고리 [편집]

전 임
(신설)
러시아 해외정보국 국장
1991년 ~ 1996년
후 임
뱌체슬라프 트루브니코프
전 임
안드레이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
1996년 ~ 1998년
후 임
이고리 이바노프
전 임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
1998년 ~ 1999년
후 임
세르게이 스테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