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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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주의(反共主義)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치 이념이다.
목차 |
[편집] 역사
[편집] 히틀러의 반공 정책
1930년대 독일,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만 싫어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도 적대적으로 생각하였다. 1930년대 초에 일어난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그는 반공 정책을 더욱 더 강력하게 취했으며 심지어 "국회의사당에 불을 지른 자는 모두 빨갱이이며, 이들을 처형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글까지 썼다. 하지만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은 독일내 좌파들을 탄압하기 위한 날조사건에 불과하다. 정권을 잡은후 나치정권은 마르크스주의 서적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소설가 토마스 만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여서 추방하는등 독일내 공산주의를 탄압했다. 물론 독일 노동운동도 노동조합통폐합으로 활동이 제한되었다.
[편집] 미국의 반공 정책
무분별한 반공주의의 광풍이 불어닥친 시대를 일컫는 매카시즘 시대 당시에는 공산주의자로 의심받는 자는 직장에 도태되거나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를테면 찰리 채플린의 경우 영화 《모던 타임즈》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사회주의자로 의심받아 추방당하는 수모를 받았다. 그외 독일계 사회주의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반공주의자들의 탄압때문에 동독으로 가야했다.
[편집] 일본의 반공정책
20세기초 지식인들에 의해서 유입된 사회주의는 대역사건(1910년),치안유지법(1925년), 고등계 신설로 탄압받았다. 1930년대 군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일본공산당원등의 좌파인사들이 고문과 회유때문에 사상전향을 할 정도로 혹독한 탄압을 당했다.
[편집] 대한민국의 반공 정책
대한민국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전 1920년대부터 일부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갈등에서 시작되어 해방 직후 만주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의 부녀자 겁탈, 종교 등의 자유 억압, 약탈, 1945년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의 3.8도선 기점으로 남북한을 분할하는 신탁통치 찬성 등으로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북조선에서는 대규모적인 반공운동이 일어났다. 1945년 11월에는 함흥반공의거에 이어서 신의주반공의거가 일어나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이 때 이에 가담한 학생, 청년, 시민, 종교인들이 대거 살상당하거나 투옥되어 모진고문을 받았고, 일부는 북한에서의 활동이 어려움을 느끼고 대거 월남하였다. 월남민 중에는 1946년 3월, 북조선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인해 모든 재산이 날아간 지주층 및 자본가, 친일파처벌 때문에 살 길을 찾고자 한 친일파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 중에서는 일본 관동군 출신의 김창룡을 비롯한 같은 악질 친일파들도 많이 있었다. 한편,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 결정이 난 지 얼마 후, 공산당이 찬탁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서자 대부분의 남북한 민중들이 공산주의에 등을 돌렸다. 남한에선 공산당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여운형, 조봉암 등이 공산당을 탈퇴하여 중도 우익으로 선회했고, 미 군정이 백색테러단체라 규정한 우익청년단원들의 좌익에 대한 테러행위가 자행되었다. 6.25 전쟁 후에는 남한에서 더더욱 반공정책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반공은 남한의 통치자들에게 있어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수단으로, 반체제세력에게는 타도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이 통치했을 시절에는 공산주의자와 그에 가담한 자들은 국외로 추방되거나 처벌받았다. 인혁당 사건 날조나 동백림 사건 과장을 근거로 역대 대통령들의 반공주의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등의 민간인 학살 범죄들의 원인은 반공주의에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반체제세력 중 공산주의적 성향이나 반국가적 성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에서 반체제 세력을 공산주의자로 만드는 반공법을 두고 흔히 '막걸리반공법'이라고 불렀다.
[편집] 서유럽의 반공 정책
[편집] 기타 국가들의 반공 정책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모로코, 태국,피노체트 군사정권시절 칠레 등이 강력한 반공 정책을 취하였는데, 특히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경우 칠레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세력이나 인사들을 학살, 고문, 살인등으로 탄압하는 반공주의 정책을 취하였다.
[편집] 냉전 종식 이후
대부분 국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반공 정책이 약화되었다.
[편집] 유명한 반공주의자
[편집]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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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
- 김영삼
- 김좌진
- 넬슨 A. 록펠러
- 노태우
- 더글라스 맥아더
- 로널드 레이건
- 마거릿 대처
- 바츨라프 하벨
- 바티스타
- 박정희
- 김두한
- 베니토 무솔리니
- 사담 후세인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 수하르토
- 신익희
- 아돌프 히틀러
- 안와르 사다트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우드로우 윌슨
- 윈스턴 처칠
-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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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 조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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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H. W.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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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S. 트루먼
- 후안 페론
- 히로히토
- 힌덴부르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