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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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하는 생디칼리스트

극좌(極左), 급진 좌익(急進左翼) 또는 혁명적 좌익은 극단적으로 좌익적인 생각, 사람, 당파 세력을 가리킨다. 반대어는 극우이다. 권위주의적 극좌는 평등을 위해 자유를 희생할 수 있다는 일련의 정치적 행위를 행한다고 평가되며, 아나키스트적 극좌는 이상주의적이라고 평가된다. 공통점으로는 인간의 보수적 사회 통념, 그리고 부르주아지적인 모든 체제, 사회·문화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극좌익 지지자 대다수가 급진적 무신론자이며, 극좌 운동은 직접민주주의, 반국가주의, 반미주의, 반세계화 운동이 동반하는 공산주의 운동으로 나타나거나 생디칼리즘, 아나키즘으로 표현되는 양상을 보인다. 극좌 정치 세력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눠지는데 중앙집권 일당제 정치를 선호하는 공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을 보이는 극좌와 그와 다르게 정당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당 활동을 배제한 채 좌익 운동을 하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즘(무정부-조합주의, 생디칼리즘과 같은) 성향의 극좌 정치 운동 세력이 있다. 전자는 좌익 운동을 당에 의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붕괴시키려고 하거나, 권위주의적 극단성을 보이기도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자본주의적 사회·문화를 포함하여 모든 권위주의 현상을 비판하기 때문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대비되는 정치 운동이기도 하다.

개요[편집]

극우와의 차이점과 공통점[편집]

극좌는 평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 다른 가치(예를 들면 경제, 정치, 사회의 자유를 제한하며, 이는 대표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만 해당한다)의 제한을 주장하거나, 둘 다 충족시키자는 이상주의를 내세운다. 또한 우익민족주의와 같은 인종주의 성향을 혐오하며, 국제주의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좌파민족주의(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적 민족주의) 정치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반대인 극우는 평등을 혐오하며, 평등을 억압하고 또한 정치·사회적 자유까지도 제한하고 국가를 유기체적 존재와 동일시하여 국가를 숭배하고 인종주의 성향이 있으며, 국가를 숭배하기 때문에, 이들(극우파)은 자국이 더 강력한 국가가 되길 원하며, 지나친 경제개발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주장한다.[1]

공통점으로는 사상의 극단성이 여타 다른 분파들에 비해 심하며, 폭력적 직접 행동이 동반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온건파에 의해 비판을 수 없이 받으며(예를 들면 극좌는 온건좌파에게, 극우는 온건우파에게 비판을 받는다), 사상에 지우쳐 지나치게 편향적이라는 것이다. 극좌의 대표적인 인물로 블라디미르 레닌과 같은 혁명가가 있으며, 극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2]

각국의 극좌[편집]

대한민국에서의 극좌[편집]

대한민국 정부 수립인 1948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 국내에 잔존했던 빨치산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은 전원 토벌되었고, 극좌 지식인들이 나오지 못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독재에 대한 반발로 인해 공산주의 사상이 국내에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3] 그러나,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다시 극좌에 해당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의 힘이 약해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극좌 이념을 배울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있으나, 극좌 지지자는 극우 지지자의 경우처럼 경제 공황과 과도 경쟁, 실업의 증가로 인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해당 극좌 이념에 정통을 한 사람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무정부-조합주의공산주의를 포함한 극좌 지지자들은 여전히 그 수가 현저히 낮으며, 과거 공산주의 이념을 표방했던 국가인 북한과 현재의 권위주의적인 북한 모습과 겹쳐지면서 극좌 이념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현재 극좌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은 없으며, 대한민국에서의 극좌은 사실상 붕괴된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에서의 극좌은 국가보안법 폐지, 군비감축, 노동자 자주관리 시스템 도입, FTA 폐지, 재벌 해체, 대학교 국유화 등을 주장한다.

일본에서의 극좌[편집]

1900년 일본사회주의협회를 시작으로, 1901년 일본 사회민주당이 창당되면서 일본 좌익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1922년에는 일본 공산당이 창당되어서 극좌 지식인들도 많이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좋게보지 않았던 일본 제국 의회는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좌익 지식인들을 탄압한다. 결국 1945년 일본 항복까지 일본 좌익들은 광범위하게 숙청당했다.[4]

1945년에는 일본 사회당이 출범하여 일본 좌익 세력을 이끌었으나, 극좌 세력은 흔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일본 시민의식, 문화를 볼 때 좌익 정치운동은 당대 현실에 맞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도 크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는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와 더불어, 일본 학생운동권에서 공산주의(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모택동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은 매우 기본적인, 보편화된 사상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의 극좌들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이며, 전학공투회의, 안보투쟁 등등 수많은 극좌 성향의 학생운동 단체와 이념운동이 잦았다.[5]

그러나 1969년에 조직된 극좌 성향의 무장 테러리스트 단체인 일본 적군파가 나오면서, 그들의 과격 활동에 대해 반발심을 느낀 일부 학생운동권과 시민들이 극좌 정치운동가들에 대해 등을 돌리면서, 1970년대 초반에 일본 극좌 학생운동권은 붕괴된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의 극좌 정치운동 세력은 붕괴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6] 일본 공산당의 경우는 일본 내에서 제일 좌익 성향이 강한 정당이지만, 극좌라고 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오늘날의 일본 극좌들은 소수 지식인들만 따르고있다. 이들은 과격한 반미주의와 더불어, 주일미군, 천황제, 미일동맹 폐지, 자위대 해산, 공화제 전환, 원전 폐기, 노동자 자주관리 시스템, 평화헌법 존중 등을 주장한다.

중국에서의 극좌[편집]

1921년에 창당된 중국 공산당중국 대륙에서 모인 극좌 지식인들이 결성한 정당이었다. 중국 국민당손중산은 중국의 극좌들에 대해서 호의적이었으며, 중국 공산당과 연대를 했었다. 하지만, 1925년 장개석이 국민당의 총사령관이 되고 1927년 부터 국민당 내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면서, 중국의 극좌들은 강서성을 중심으로 무장 투쟁 활동을 전개했다.

1937년, 모택동의 공산당은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서 국민당과 임시 동맹을 체결했다. 중일전쟁 종전 후 1946년에는 제2차 국공내전이 재개되어, 다시 국민당에 대항해 싸웠으며, 1949년에 승리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다.[7]

1950년대 중반에 시작된 대약진운동은 실패로 끝나, 모택동이 사임했다. 국가주석으로 강등된 모택동은 권력을 재탈환하기 위해서 전례가 없었던 문화대혁명이라는 극좌 운동을 선동했다. 1966년 부터 1976년까지 중국 사회는 '좌익'에 반대되는 모든 가치개념이 금지되어왔다. 모택동 사후, 화국봉이 잠시 중국이 지도자로 있다가 등소평1981년 군사주석의 자리에 오르면서, 중국 내부에서의 극좌적 정책은 폐지되고, 실행되지 않았다.[8]

정치경제학자 이안 브레머는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좌익 정당이라고 하기엔 어려우며, 그저 시장사회주의에 필요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정당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극좌는 문화대혁명 시절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며, 현재 노동착취가 심한 중국 사회에서 그 이념의 극단성은 더욱더 치중되고있다. 이들은 중국 사회에서 착취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 계층에 대한 엄벌을 처할 것을 요구하며, 노동자 자주관리 시스템, 배급제를 더불어 의료, 주거, 교육의 무상화를 다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9]

프랑스에서의 극좌[편집]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좌익 성향의 혁명이 매우 잦게 일어났다. 대중공동체, 노동자 자주경영 경제 체제로 이루어진 파리 코뮨1871년에 민중 봉기로 잠시나마 존재했으며,[10] 1920년대 후반 경제 공황 시기에도, 유일하게 서유럽에서 공산주의 정부가 잠깐이나마 들어섰다. 2차 대전 시기에는 극좌들을 중심으로 레지스탕스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아나키즘이 유럽에서 제일 크게 흥한 나라이기도 하다. 1968년에는 68혁명이라는 신좌익 운동, 사회주의 대중운동이 전 서방권에서 최고 규모로 일어났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사회 근본 체제가 대중 운동가들에 의해 급진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프랑스 극좌들의 과격하고 잦은 노동쟁의가 프랑스 경제 상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크다.

프랑스는 전 유럽 국가들을 통틀어서 극좌의 정치 세력화, 정치 대중화가 제일 큰 규모로 진행된 국가이다.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높으며, 20대 유권자의 경우는 생디칼리즘이나 공산주의 성향을 흔히 보인다. 프랑스좌파전선(공산당, 좌파당, 반자본주의자당, 노동자 투쟁 정당의 합산) 의석수는 33석이 넘으며, 전체 의석수에 약 10%에 해당한다.[11]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에 프랑스도 예외 대상은 아니었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세계 경제위기의 주범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장 앞에 놓인 외노자, 다문화 문제가 국민 대다수에게 더 크게 작용했다. 때문에 현재 프랑스 극좌의 입지는 낮아졌다.[12]

사상[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동아일보 극좌-극우 기사문
  2. 프레시안 기사문
  3. 《대한민국 대학운동권사》참조
  4. 《일본공산당사》참조
  5. 《적군파》참조
  6. 일본 적군파와 그 여파
  7. 《모택동과 문화대혁명》 참조
  8. 《덩샤오핑-개혁개방의 총설계사》 참조
  9. 《인물로 읽는 현대 중국정치사》참조
  10. 파리 코뮌에 대한 내용
  11. 프랑스 공산당의 규모
  12. 프랑스 극우익 강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