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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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해방 또는 엔엘(NL, National Liberation)은 레닌 스탈린주의의 연장선으로 6.25 전쟁 때에 존재했던 좌파 운동이면서, 1960년 12월에 81개국 공산계열이 '민족민주주의 혁명론'을 제시하면서 남한 좌파에 '민족민주운동'이란 이름으로 자리하며 핵심 사상으로 존속해왔다. 자주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차

[편집] 정의

민족 해방파는 80년대 이후 정국으로만 국한할 때 한국 사회를 '식민지반(半)자본주의'로 평가하는 그룹으로, 이것은 대한민국 사회를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보는 견해이다. 6.3 학생운동의 '서울대'대자보[1]부터 70년대 반 유신 운동, 민청학련 등을 거쳐 10.26 에 이르기까지 남한 좌파 운동에서 남한침략과 수탈의 본질적 제국주의는 '미국'이었고, 광주항쟁에 대한 무력진압을 미국이 묵인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미'로 타켓이 옮겨지게 됐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에 따른 사회 변혁을 주장한다.

민족 해방파는 민중 민주(PD) 그룹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PD는 NL에 비하여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모순을 강조하며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충실하자는 그룹이다. 민중 민주파는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보면서 민족 모순을 계급 모순의 하위 개념으로 파악했다.

[편집] 이념

민족 해방파는 제국주의 대 민중을 대립관계로 보고 모든 투쟁에서 항상 반미 자주화를 기본적 투쟁으로 설정하였다. 조선로동당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수용하여 형성된 주체사상파 또는 주사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정파 내 소수파인 '비주사 NL' 또는 'NL-left'는 이와 달리 본래 제헌의회파(CA) 계열이었다.

80년대로만 국한했을 때 민족 해방파는 식민지반자본주의라는 한국의 특수한 현실에서 민족 모순이 계급 모순에 우선한다고 보며, 학생 운동 및 변혁 운동의 초점을 반미주의남북 문제로 보아 마르크스-레닌주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민족 해방파의 이념은 식민지반자본주의론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이 양 축을 이룬다. 이 중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은 현실 모순의 인식이며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은 그 모순을 타개하는 방법론이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에서는 식민지반봉건사회 또는 식민지반자본사회를 를 민중 혁명으로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은 제국주의에서 해방되는 민족해방 혁명과 계급해방을 달성하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이 독자적이면서도 통일적인 유기체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통일로 이루는 이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체제 이념이기도 하다.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반미자주화와 반파쇼민주화, 조선로동당에 연결돼 제국주의에 결속한 대한민국 자본가 세력을 타도하는 의미로서의 남북 통일을 투쟁 노선으로 설정한다.

[편집] 구성

민족 해방파 내부에도 좌파에서부터 우파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다. 노동자 계급과 민중에 정치적 무게 중심을 두고 자주, 민주, 통일 이념을 실현하는 쪽이 좌파, 우파적 이념인 민족주의를 우선시하는 쪽이 우파를 이룬다. 민주노동당이 대표적인 좌파 민족주의 정당이다. [2]

[편집] 주체사상파

이 부분의 본문은 주체사상파입니다.

주체사상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이념이자 조선로동당의 지도 이념인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민족 해방 계열의 영향력 있는 파벌 중 하나이다. 1985년 발표된 김영환강철서신 이후 대한민국 운동 세력 내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해 왔다.

주체사상파는 자생적인 친북주의자들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단파방송을 몰래 청취하여 북조선 입장의 정세 분석과 이론을 수용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학생 운동의 전반적 쇠퇴와 북조선에 대한 정보 공개로 냉전 시대와 같은 독점적 지식 향유가 불가능해지면서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편집] 비주사파 민족 해방파

주체사상파가 아닌 민족 해방파는 '비주사 NL'로 불리면서 민족 해방 계열 내에서 좌파를 구성한다. 민족 해방 좌파라는 의미에서 'NL-left'라고도 불리며 정파 내에서는 다수인 주체사상파에 맞서는 소수파이다. 이들은 본래 1980년대 변혁 운동에서 한 갈래를 차지하며 제헌의회 구성을 주장했던 제헌의회파에 속했으며, 민족 해방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과는 달리 민족민주혁명론을 주장하던 그룹이었다. 이들 가운데 민족 해방의 이념인 민족 모순 우선론에 공감하는 정파가 비주사 민족 해방으로 형성된 것이다.

[편집] 역사

[편집] 배경과 성립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 미국이 전두환을 지지하여 폭력 진압을 방관한 것을 계기로 미국의 정체를 바로 보자는 미국 바로 알기와 반미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민족 해방 그룹은 미국과의 심정적 결별과 과학적 학생운동론의 등장 이후, 1985년 말 경에 고려대학교서울대학교에서 시작되어 통일 운동에 앞장서면서 학생 운동권의 주류로 등장했다.

[편집] 성장

1980년대 중반 자민통 세력이 민족 해방파에 속한다. 이들은 학생 운동에서 주도권을 차지하여 전대협한총련의 주도 세력이 되었고, 재야 정치 세력인 전국연합, 범민련등을 구성하였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학생운동권 주류는 NL이었다.

1980년대 이래 민중 민주(PD)파와의 치열한 논쟁과 사상 투쟁에서 우위를 보이며 학생 운동 전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까지 PD와의 치열한 노선 투쟁을 거치며 이론과 조직 양면에서 학생 운동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학계에서는 사회과학 논쟁인 식반론 대 신식국독자론 논쟁, 일명 사구체논쟁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NL과 PD 양측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편집] 현실 정치 참여

현실 정치에서는 198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이래로, '비판적 지지', '범민주후보론', '당선 가능한 야당지지' 등을 주창하며 기존 야당 세력에 활발히 접근하여 연대를 추진한 바 있다. 일부는 기성 정당에 입당하여 제도권 정치에 진출해왔다.

이후, 본래 이들과 별개의 세력이 구성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등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자, 여기에 집단 입당하여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다수파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당내 세력인 자주파가 민족 해방 계열이다. 민주당 중 구 열린우리당 계열의 일부 학생 운동가도 과거 민족 해방파였다.

[편집] 인물

NL 계열의 학생운동을 주도했다가 제도권 정당으로 투신한 인물로는 1988년에 '평민연'에 몸을 담은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1991년 ‘신민련’에 몸을 담은 이우정, 신계륜, 박우섭, 1995년에 ‘통일시대 국민회의’에 몸을 담은 김근태, 심재권, 천정배 등이 있다.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 임종석, 최재성 등 주로 민족 해방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전대협 출신 간부들도 제도권 정당으로 들어갔다.

[편집] 의의

정치학자 최장집은 민족 해방이라는 파벌을 대한민국 사회의 모순을 파악하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 의식 중 하나로 파악한다.[3] 최장집에 따르면, NL적 문제의식과 PD의 문제 의식은 "강력한 반공 권위주의 국가와 권위주의적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민주화의 두 의제를 축약"한 것으로, 양대 문제를 민족 문제와 민중 문제로 파악한다면 NL과 PD는 각각 한 쪽을 강조하여 본 것이므로 상호연계성을 되살려 NL-PD의 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한국적 '해방의 이념'을 되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편집] 함께 읽기

[편집] 참고자료

[편집] 주석

  1. 《6.3 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부록 참조
  2. 이재현. “NL-PD 융합시키겠다고?”, 《한겨레》, 2005년 11월 10일 작성. 2008년 6월 22일 확인.
  3. 최장집 "NL-PD는 되살려야 할 '해방의 이념'"”, 《프레시안》, 2005년 10월 21일 작성. 2008년 6월 22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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