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론시타트 반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크론시타트 반란
(비볼셰비키 좌파 봉기의 일부)
크론시타트를 공격하는 노농 적군.
크론시타트를 공격하는 노농 적군.
날짜 1921년 3월 7일 ~ 17일
장소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코틀린 섬 크론시타트
결과 볼셰비키의 결정적 승리, 봉기 진압
교전국
Anarchist flag.svg
  • 소비에트 발틱함대
  • 크론시타트 시민군
Red Army flag.svg
지휘관
스테판 페트리첸코 레프 트로츠키
미하엘 투하체프스키
병력
17,961명 25,000 ~ 30,000명
피해 규모
약 1,000명 전사,
1,200명 ~ 2,168명 처형
527명 ~ 1,412명

크론시타트 반란(러시아어: Кронштадтское восстание)은 1921년 러시아크론시타트에서 일어난 반정부 반란사건이었다. 원인은 경제적 피폐와 공산당의 1당 독재체제에서 유래되었다. 이 영향으로 농민들은 몇몇 지방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노동자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동맹파업을 감행하였다. 크론시타트의 수병과 시민은 이튿날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의 슬로건을 내걸고 궐기하였다. 결국 17일간 격전이 발생했고 이 반란이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인지한 볼셰비키 정부는 미하일 투하체프스키를 사령관으로 임명, 3월 18일 진압명령을 내렸다. 폭격기까지 동원하며 시위를 진압하려는 붉은 군대와 격전 끝에 반란을 일으킨 수병 8,000여명은 핀란드로 탈출하였다. 이 반란으로 사망자 600명, 부상자 1,000명을 냈고, 2,500명이 투옥되었다. 정부군측에서도 약 1만 명의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를 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