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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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영어: dadaism)은 1915년부터 1924년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반문명, 반전통적인 예술운동이다.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서 독일을 거쳐 중부 유럽으로 퍼져 나갔으며, 1920년과 1923년 사이 프랑스 파리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어원[편집]

'다다'라는 명칭은 1916년 2월 후고 발(Huge Ball)이 만든 카바레 볼테르에서 사용되었다. Dada라는 말은 장난감 말에 대한 유아기적 언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특정한 것이 아닌 모든 것들을 의미할 수 있다.

배경[편집]

마르셀 뒤샹의 "샘"

다다는 서구의 문학과 각종 예술성 안에 있던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심의 형태를 보였다. 이것의 원인은 전통적인 문명이 세계 1차 대전이라는 비극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와 강한 비판의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의 모든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의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려고 했다.

다다이즘 예술가들의 시작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부터 였다. 1차 세계 대전 중 중립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스위스는 주변 국가 프랑스, 독일 등과는 달리 반정부주의적 예술가들을 향한 박해가 적었던 곳이였기 때문에 다다이즘의 중심지는 스위스가 되었다. 이 후 대다수의 다다이즘 예술가들은 일명 '거리 예술'이란 거리에서 자신들의 미술과 창작을 보여주는 등의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다다이즘의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다다이즘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 퍼지는 데는 짧은 시간이 걸렸으나 미국에 번지게 된 것은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예술가 휴고 벨에 의해서였다. 1920년대 중반 휴고 벨은 미국 뉴욕에서 미국 국적의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만나 다다이즘의 전파를 주도하였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Fountain)은 현재도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성격[편집]

다다는 작가들의 태도였다. 이들은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또 빈번한 미술의 대상이 되었던 것들을 조롱하기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존의 미술을 파괴했다. 이중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꼴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 파피에 콜레(Papier Collar), 데페이즈망(depaysment), 자동기술법(automatism)등이 있다.

인물[편집]

후고 발(Hugo Ball), 트리스탄 짜라(Trisstan Tzara), 마르셀 얀코(Marcel Janco)등이 주도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