옘마 골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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옘마 골드만

옘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년 6월 27일 ~ 1940년 5월 14일)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혁명가, 무정부주의자였다.

생애[편집]

유년기[편집]

러시아 제국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으며 그후 유년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초기 활동[편집]

1887년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일어난 시카고의 헤이마켓 폭탄테러사건에 자극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골드만은 실업자가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음식마저 제공받지 못한다면 식료품을 훔쳐도 좋다는 주장에서부터, 징병 제도 반대, 산아제한 권장, 언론의 자유, 특히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남녀 평등 등을 역설하다가, 뉴욕에서 체포되어 1년간 투옥되었다. 그 후 아나키즘, 여성의 권리, 그 밖의 민감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강연 및 집필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결국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1]

수많은 망명 생활[편집]

1916년 산아제한 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 반전활동을 하다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나키스트 버크만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로 강제송환되었으나, 자유주의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골드만은 소비에트정부에도 반대하여 이후 영국,미국,캐나다등지에서 살았다. 1936년 에스파냐 내란이 일어나자 에스파냐아나키스트를 도와서 활약하였다.  [2]

만년[편집]

만년에는 스페인에서 강연과 기금 모금 활동을 통해 반 프랑코 운동에 전념했다. 1940년 캐나다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3]

사후 및 업적[편집]

시카고의 헤이마켓 아나키스트 묘지 근처에 묻혔다. 저서에 『러시아에 대한 나의 환멸(My Disillusionment in Russia)』과 자서전 『나의 생애(Living My Life)』 등이 있다. [4]

이력[편집]

  • 1885년미국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활동을 벌였다.
  • 1889년에 모든 정치 권력을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 모임에 가입했다.
  • 1892년펜실베이니아주 홈스테드에서 발생한 파업에서 카네기 강철회사의 구사대가 몇몇 파업 노동자를 사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 1893년에 실업자가 빵을 훔치도록 부추긴 죄목으로 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 1916년에 다시 산아제한에 관한 정보를 불법으로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수감되었다.

주석[편집]

  1. [1]
  2. [2]
  3. [3]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