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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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Πλάτων

출생 기원전 427년
고대 그리스 아테나이
사망 기원전 347년
직업 학자(철학)

플라톤(/ˈplt/;[1] Greek: Πλάτων, Plátōn, "넓은, 어깨 폭이 넓은";[2] 기원전 428/427 또는 424/423 [a] – 기원전 348/347)은 서양의 다양한 학문에 영향력을 가진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사상가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고, 현대 대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인 아카데메이아(academia)를 아테네에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3] 따라서 일각에서는 그의 실제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 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 폭넓은 주제를 강의하였으며, 특히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들에 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의 저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대화편이다. 비록 일부 편지들은 단지 그의 이름을 붙여서 내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플라톤에 의한 진짜 대화편은 모두 온전하게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 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그리스인들이 플라톤의 것으로 생각하는 '알키비아데스 I'과 '클레이토폰' 등과 같은 대화편들은 의심스럽거나 또는 '데모도코스'와 '알키비아데스 II' 등과 같은 대화편들은 대개는 위조된 것으로 여겨진다. 편지들은 대개 거의 모두 위조된 것으로 여겨지며, 일곱번째 편지만이 예외로서 위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등장인물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 내용과 주장 중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견해이고,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견해인지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것도 글로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종종 "소크라테스의 문제" 이라 부른다. 그러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플라톤의 많은 아이디어들, 적어도 그의 초기 연구들은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것을 빌려오거나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가 이성 우위의 전통을 가진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은 더할 수 없이 크다. 영국의 철학자인 화이트헤드는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으며,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 이라 평하였다.

[편집]

플라톤은 아테나이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배우고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된 변증론에 관한 대화편이어서 그와 스승과의 학설을 구별하기 힘들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정치가로서의 꿈을 버리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여 키레네 학파로부터 이데아와 변증법의 기초를 얻고 피타고라스 학파에 접하며 실천적 정신과 실생활에의 흥미를 얻어 그의 독자적인 사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라케스〉 등을 쓰고, 40세에 귀국하여 〈고르기아스〉, 〈대(大)히피아스〉, 〈소(小) 히피아스〉를 썼다. 그는 그의 이상 국가를 실현해 보고자 친구인 디온의 권고로 시켈리아의 참주 디오뉘시오스 1세의 초청에 응하였으나, 그의 과두 정치를 비난함으로써 분노를 얻어 노예로 팔리기까지 하였다. 후에 그의 저작을 본 퀴레네 사람 덕분에 구출되어 귀국한 뒤,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건립하고 제자 양성에 전력하면서 저작에 몰두하였다. 〈향연〉, 〈파이돈〉, 〈국가〉, 〈파이드로스〉 등 주요 저술이 여기서 이루어졌고, 이 학원은 529년까지 계속되었다. 대학교의 초기 형태인 '아카데미(Academy)'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357년 디오뉘시오스 2세의 간청을 받자 망설이던 끝에 다시 시켈리아로 가서 이상 정치를 펴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1년 만에 귀국하여 〈법률〉 등 몇 개의 저서를 더 쓴 뒤 81세에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의 교육관’ 목적[편집]

그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결합된 충동적이며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는 정욕과, 육체와 결합되지 않으며 불사적인 순수한 이성으로 되어 있다고 하고, '이성'은 매우 순수한 것이지만 이 세계의 배후에 있는 완전 지선의 실체계인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세상에 탄생하여 육체 속에 듦으로써 이데아를 잊고 있다. 이 잊었던 이데아를 동경하는 마음이 에로스이며, 현상을 보고 그 원형인 이데아를 '상기'하여(상기설), 인식하는 것이 진리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 부분의 덕이 지혜이며, 정욕적 부분의 덕을 절제,이성의 명령에 복종하여 정욕을 억압하는 기개의 덕을 용기라고 하는 것이다. '올바름(dikaiosyne, 또는 '정의')란 여러 덕이 알맞게 그 기능을 발휘할 때의 상태를 말한다.' 그는 이러한 덕론을 통하여 인간 개인의 윤리학을 논하였다. 그러나 정의의 실현은 개인의 덕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설을 주장하였다. 그것이 그의 '국가(Politeia)'다.

플라톤의 교육방법[편집]

그는 국가를 개인의 확대로 생각하여 개인에 있어서의 정욕의 부분이 농·공·상업의 서민이며, 기개의 부분은 군인·관리, 이성의 부분은 통치자라고 하고, 이성은 당연히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여야 하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왕이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하는 유명한 철인 정치론을 전개했다. 이러한 통치자의 교육 제도와 방법에서 그의 교육학을 엿볼 수 있다.

귀족주의[편집]

철인 정치론을 전개한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귀족정을 옹호한다. 일반적으로 귀족정은 평등사회가 아닌 신분사회를 옹호하는 데, 플라톤 또한 신분사회를 옹호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귀족정의 궁극적인 목적과 그 실현 양태는 일반적인 귀족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가 말하는 귀족정에서의 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높은 신분으로써의 도덕적 의무를 중시해야 하는 데, 그 실현은 한가지 예를 들면 왕의 사유재산의 형태로 나타난다. 플라톤은 왕의 사유재산은 오직 공익을 위해서만 쓰여야한다(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 밑의 귀족들까지도 사유재산을 공유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신분의 상징인 왕이라면 그만큼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해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4주덕'에서는 조화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데, 4주덕에 맞는 각각의 신분이 각자 맡은 일만을 해야하며 그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한다거나 서민이 전쟁을 한다는 것과 같은 용기(통치자의 덕)를 보이는 것은 플라톤의 관점에선 사회적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저작[편집]

35편의 대화편과 13편의 서간은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것으로 여겨졌으나 현대 학자들은 최소한 일부 저작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플라톤의 저작은 여러 방식으로 간행된 바 있는데, 그에 따라 플라톤의 글을 명명하고 배열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되었다.

플라톤의 글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16세기 앙리 에티엔(헨리쿠스 스테파누스)의 플라톤 판본에서 비롯되었다.

또 플라톤의 글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4부극에 따르는 전통이 있었는데,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 방식이 고대의 학자이자 티베리우스 황제의 궁정 점성가였던 트라쉬불로스의 것이라고 여겼다.

아래 플라톤의 저작 목록에서 학자간에 플라톤이 쓴 글인지 합의가 되어 있지 않은 책은 (1) 표시를, 그리고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책은 (2) 표시를 달았다. 표시가 없는 저작은 플라톤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I.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II. 크라튈로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트, 정치가
III. 파르메니데스, 필레보스, 향연, 파이드로스
IV. 알키비아데스 1 (1), 알키비아데스 2 (2), 히파르코스 (2), 에라스타이 (2)
V. 테아게스 (2), 카르미데스, 라케스, 뤼시스
VI. 에우튀데모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메논
VII. 대 히피아스 (1), 소 히피아스, 이온, 메넥세노스
VIII. 클레이토폰 (1), 국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IX. 미노스 (2), 법률, 에피노미스 (2), 편지들 (1)

그 밖에 저작은 플라톤의 이름을 빌었으나 상당수는 고대에 이미 위작으로 여겨졌으며, 트라쉴로스는 자신의 4부극식 저작 배열에서 이런 류를 넣지 않았다. 아래 작품은 "위작"(Notheuomenoi) 또는 "위서"(Apocrypha)라 불린다.

악시오코스 (2), 정의 (2), 데모도코스, , 에뤽시아스 (2), 할퀴온 (2), 올바름에 대하여 (2), 덕에 대하여 (2), 시쉬포스 (2)

한국어 서적[편집]

주석[편집]

  1. Jones 2006.
  2. Diogenes Laertius 3.4; Sedley (2003), p. 21; Seneca, Epistulae, VI, 58, 30: illi nomen latitudo pectoris fecerat.
  3. 아카데미아(교육학용어사전).

문헌[편집]

1차 문헌[편집]

2차 문헌[편집]

  • Jones, Daniel (2006). 《Cambridge English Pronouncing Dictionary》, 17, Cambridge University Press
  • Sedley, David (2003). 《Plato's Cratylus》. Cambridge University Press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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