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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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는 정형화된 형식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 사조중의 하나이다. 이는 낭만주의와 가장 대비되는 개념이다.

고전주의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를 토대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비잔틴 양식이 저물면서 이슬람 문화와 더불어 엄청난 지적 유산이 유럽 내로 들어오게 된다. 이로 인해 일종의 지적 홍수를 겪게 된다. 고전주의를 통해 수학과 기하학이 미술의 영역에 상호 연관을 지니는 것으로 인시하게 됐으며 인문주의와 현실주의, 형태주의 등이 고대와 근대 문화 간을 오가며 발전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주의는 16세기와 17세기에 거쳐 다른 감각을 토대로 계속 발전을 겪게 된다. 엄격한 규율이나 규칙, 미술과 음악에 대한 규격화된 양식을 지나치게 가꿨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루이 14세의 궁정은 고전주의의 산실로 여겨졌다. 당시에는 고전주의에 입각한 예술 양식이 모든 궁정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페라는 근대의 입장에서 볼 때 고대 그리스의 희극이나 연극을 노래와 춤으로 새롭게 조명함과 동시에 그리스의 양식을 좀 더 발전시킨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각의 고전주의[편집]

19세기 초두의 회화에 있어서 다비드가 군림한 것과 같이 조각에서는 카노바가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를 수립하면서 압도적인 영향을 주었다. 카노바는 이탈리아의 조각가로서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석공(石工) 밑에서 일하는 동안에 조각의 재능을 인정받아 22세 때 로마로 나갔는데, 폼페이가 발굴되어 로마는 고전 연구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 조각의 단정함과 간결함에 감동하여 18세기의 과다장식적(過多裝飾的) 제작을 부정하고 고대의 단정성을 현대에 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이탈리아의 국정(國情)이 복잡한 중에도 제작은 왕성하여, 작품으로는 〈법황(法皇) 클레멘스 13세의 묘비(墓碑)〉(1792), 고대에서 제재를 취한 〈헤라클레스와 리카스〉(1810) 등등이 있고, 나폴레옹의 여동생을 비너스 모양으로 만든 반나상(半裸像) 〈폴린 보나파르트의 상(像)〉(1807)이 유명해져서 나폴레옹의 초빙을 받아 파리에 간 일도 있다. 카노바 작품은 고대의 형태에 심취하여 고대의 단아하고 화려함을 단지 외형적으로만 모방하였기 때문에 형태상으로는 단정연(端正然)한 완성을 보이고 있으나, 안으로부터 북받쳐 오르는 생명력을 결여하여 무감동한 아름다움으로 그치고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 시대는 전적으로 고대 로마를 예찬하던 시대여서 카노바의 고전주의적 조각은 프랑스에 있어서도 크게 주목을 받아 19세기 초두에는 프랑스의 조각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1]

음악에 있어서의 고전주의[편집]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고전주의와 카노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