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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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啓蒙主義)란 17, 18세기유럽과 신세계를 휩쓴 정치, 사회, 철학, 과학 이론 등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사회 진보적, 지적 사상운동으로, 계몽사상이라고도 부른다. 계몽주의는 교회의 미신적인 면과 독단적인 해석에 대해 반란하였다. 대신 실제적인 도덕을 지향하였으며 형이상학보다는 상식, 경험, 과학을, 권위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특권보다는 평등한 권리와 교육을 지향하였다. 이 계몽주의는 1760년경 이후 강력히 대두되게 된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이성으로 적법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성은 권위의 요소이자 권위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성은 인간과 세계의 보편적 원리나 자명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게 했으며 진보를 확신토록 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계몽주의 운동이 거의 동시에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대서양 주변 국가에서 일어난 각종 혁명을 통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러시아,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런 움직임을 따랐으며, 라틴 아메리카 역시 아이티 혁명을 통해 이런 움직임에 동참했다. 미국 독립 선언과 미국 권리 장전, 프랑스 인권 선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제정한 1791년 5월 3일 헌법은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1]

"계몽주의" 또는 "계몽주의 시대"라는 용어는 어떤 하나의 운동이나 사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속하는 사상가들은 서로 충돌되는 것을 주장하기도 했고, 매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계몽주의는 어떤 사상의 집합체라기 보다는 가치의 집합체에 더 가까웠다. 전통적 관습, 의례, 도덕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계몽주의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여러 대립하는 철학 사이에도 비슷한 부분이 상당했다. 심지어 계몽주의에 반대했던 철학자들까지 계몽주의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이성의 시기"는 보통 계몽주의 사상의 전주곡으로 여겨진다.[2]

목차

계몽주의의 뜻[편집]

Enlightenment(프랑스어: Lumières, 독일어: Aufklärung)를 번역한 한자어 계몽(啓蒙)이란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Enlightenment 사상의 다만 한 부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자어 번역이 대개 그렇 듯, 이 번역은 한국어로 뚜렷한 뜻을 전달해 주고 있지는 않다. 한편, 칸트는 인간이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 타인의 지도없이 이성적으로 사는 것 또는 미완성 상태에서 완성태로 나아가는 것을 계몽이라 했다

17,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이른바 계몽사상은 인간이 이룩한 문화문명에 고취되어 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명을 진보, 발달 시키려는 사상 또는 그러한 행동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다시 말해 인간의 지성 혹은 이성의 힘으로 자연과 인간 관계, 사회와 정치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명료하고 자명한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낙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대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계몽사상은 이와 같은 정신으로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유럽의 중세 시대를 지배한 전제군주와 종교신학의 독단 교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교회와 국가를 비판함으로써 지나친 권위를 상당부분 낮추었다. 신학자들이 신성을 수정한 것과 같이 정치가들도 국민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계몽사상의 의의는 국가·정부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정부가 더이상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민중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인간의 권리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는 당연히 국민의 동의를 받지않고는 존재할 수없다.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민의를 배반한다면 민중은 혁명적인 저항권을 발동해 국가를 교체, 폐지할 수 있다[3]. 이런 연유로 계몽사상은 17, 18세기 시민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이 노력의 첫 장을 연 철학자로는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 존 로크를 손꼽을 수 있다. 이후 계몽주의는 프랑스독일에서 백과전서파 (디드로, 볼테르),루소칸트에 영향을 주어 이후 사상들의 출현에 기여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편집]

프랑스의 계몽 사상은 프랑스 혁명 이전에 시작되었다. 계몽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계기가 되었으며 민중들에게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은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통해 깨부수어야 한다는 강한 사회개혁 의지를 심어주었다. 민중들의 이러한 사회의식은 프랑스 혁명의 원천이 되었으며, 지금도 민중들이 그들을 억압하는 권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저항권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존중되고 있다.[4]

영국의 계몽사상[편집]

영국의 계몽주의 사상에서 특이한 점은 혈통주의에 따른 "선택받은 자"에 대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고전주의의 계층 혹은 직위에 따라 개인적인 능력 또한 세습된다고 말한다.

독일의 계몽사상[편집]

독일은 당시 시민사회의 발달이 미미했기에, 프랑스의 계몽사상의 활발한 전개에 영향을 받았는데, 프랑스와는 다르게 독자적으로 발달했다는 특징이 있다.

계몽주의의 영향[편집]

  • 계몽주의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하느님의 책'(The book of God)이라고 불리던 성서에 대한 자유로운 비평의 토양이 되었다.

대표적 계몽사상가[편집]

주석[편집]

  1. Robert R. Palmer, The Age of the Democratic Revolution (1964)
  2. Hackett, Louis (1992). The age of Enlightenment. 2008년 1월 18일에 확인.
  3. 안효상 역《세계를뒤흔든 독립선언서》그린비,53쪽
  4. 《교실밖의 세계사》/김성환 지음/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