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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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데카르트(프랑스어: René Descartes, 라틴어: Renatus Cartesius, 1596년 3월 31일 - 1650년 2월 11일)는 프랑스의 대표적 수학자, 중/근세철학자이다. 데카르트 좌표계로 대표되는 해석기하학을 창시하였고, 방법적론적 회의를 거쳐 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제1 원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틴어: Cogito ergo sum / 프랑스어: Je pense, donc je suis)의 명제를 선언하여 근대 이성주의 철학의 정초를 닦았다. 수학자 데카르트는 처음으로 방정식미지수x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목차

[편집] 생애

데카르트는 1596년 투랜 지방(Touraine)의 투르 인근에 있는 소도시 라에(La Haye, 현재 그의 이름을 빌어 Descartes)의 법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브르타뉴(Renne) 시의원이었으며,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14달이 못되어 세상을 떴다. 이후 그는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으며, 어린 시절 몸이 무척 허약했다고 전해진다. 1606년 그는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즈 (Collège la Flèche)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8년간에 걸쳐 철저하게 중세식 그리고 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5년간 라틴어, 수사학, 고전 작가 수업을 받았고 3년간 변증론에서 비롯하여 자연철학, 형이상학 그리고 윤리학을 포괄하는 철학 수업을 받았다. 그가 이 시기에 받은 교육은 후에 그의 저서 여기 저기에 흔적을 남기게 된다 (특히 《방법서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라 플레쉬를 졸업한 후 푸아티에(Poitiers) 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수학·자연 과학·법률학·스콜라 철학 등을 배우고, 수학만이 명증적인 지식이라고 생각하였다. 1616년에 리상스(Licence)를 취득한다. 졸업 후 지원병으로 입대하여 네덜란드에 갔으며, 30년 전쟁이 일어나자 독일에 출정하였다. 1619년 네덜란드를 여행하면서 첫 작품 짧은 《음악 개론》(Compendium Musicae)을 썼다. 같은 해에 독일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여행하던 중 11월 10일 울름의 한 여관에서 자신의 삶의 길을 밝혀 주는 꿈을 꾸게 된다. 데카르트는 여기서 삶의 목표를 학문에 두기로 결심하였다.

1620년 제대하고 프랑스에 귀환, 1626년부터 파리에서 수학·자연 과학, 특히 광학을 연구하였다. 1627년에 다시 종군한 후, 1628년 단편 <정신 지도의 법칙>을 집필, 자신의 방법론 체계를 세우려 하였다. 같은 해 가을, 연구와 사색의 자유를 찾아 네덜란드로 건너가 철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 <정념론> 등은 네덜란드에 약 20년간 머물러 있는 동안에 저술한 것이다.

1628년 겨울에 데카르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 밑에 있는 프랑스를 떠나, 자유로운 학문 분위기가 지배적인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 하아렘, 에그몬드 등의 도시로 여러 차례 주거지를 옮기면서 더러는 개인 교사로 혹은 은둔 학자로 생활을 했다. 이 시기 (1630년 - 1633년)에 자연과학에 관한 책 '《세계》를 집필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책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주장한 지동설을 바탕으로 세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진술했다.

1637년부터 테카르트는 존재론인식론 문제에 몰두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해에 《방법서설》을 출판했다. 존재론과 인식론에 관한 연구 결과는 1641년제1 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후에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하게 된다.

1649년 스웨던 여왕 크리스티나의 초청을 받아 스톡홀름에 부임하여 여왕에게 철학을 강의하고, 아카데미 창립에도 관여하였으나, 1650년 초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학문 중에서 수학만이 확실한 것으로 철학도 수학과 같이 분명하고 명확히 드러나는 진리를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기존의 모든 지식을 의심하였는데, 그렇지만 최후의 의심할 수 없는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도달, 이것이 철학의 근본 기초라고 설명하였다. 그 기계적 우주관은 18세기 프랑스의 유물론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수학에 있어서는 해석 기하학을 창시하여 근대 수학의 길을 열어놓았다. [1]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철학자로의 삶도 살았다.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진리가 아닌 것들을 소거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저서 《방법서설》에 잘 나타나 있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감각도 배제 했는데, 이는 감각도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도달한 결론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다. 이 결론에 도달한 것은 《방법서설》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전능한 악마가 인간을 속이려 한다고 해도, 악마가 속이려면 생각하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제일철학을 위한 성찰'에 나와있다.) 이 명제는 근대 철학을 대표하는 명제이며,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은 이 명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데카르트가 사용한 관념이라는 개념은 칸트와 같은 철학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데카르트는 본유관념인위관념, 외래관념을 분리하였다. 여기서 외래관념은 밖에서 오는 관념을 말하고 인위관념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하며, 본유관념은 태어나면서 부터 존재하는 관념을 말한다. 본유관념은 '삼각형의 꼭지점은 세개이다.', '정육면체의 면은 여섯개 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두 평행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와 같은 것으로, 언제나 확실하게 참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덧붙여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도 확실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존재론적 증명을 통하여 신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론적 증명은 나중에 칸트의 비판을 받았다.

데카르트는 주체와 대상을 일치시키려 실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바로 연장사유이다. 연장은 구체적인 부피와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실체를 말하고, 사유는 연장과 달리 부피와 같은 것이 없는 실체를 말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연장과 사유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사유는 몸을 제어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몸과 사유를 이어주는 부분을 송과선으로 보았는데, 데카르트 이후 철학자들은 이 송과선을 몸으로 볼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편집] 저서

[편집] 참고 및 관련 문헌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편집] 바깥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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