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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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로피디아(1728년)의 기하학 표.

기하학(幾何學, 그리스어: γεωμετρία, 영어: geometry)은 도형길이, 넓이, 각도 등의 측정하거나 공간수학적 특성을 따지는 분야이다. 기하학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을 기하학자라고 부른다.

기하학을 뜻하는 그리스어: γεωμετρία는 “”(γεω)과 “측량”(μετρία)을 합친 것으로 후에 라틴어: geometria가 되어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한편 한자어 幾何(기하)는 명나라서광계가 만든 단어이다. 그는 마테오리치와 함께 유클리드의 책을 번역하였는데, 이때 제목을 《幾何原本》으로 정하였다. 幾何는 geo의 음역이기도 하지만, 중국 전통의 수학 책에서 흔히 사용되던 표현인 “얼마인가?”를 뜻하므로, 이것은 “수학”의 뜻을 살린 번역이기도 하다.

역사[편집]

기원전 3세기 경에 길이넓이, 그리고 부피에 관한 실용적인 지식들이 유클리드에 의해 정리되었다. 그의 업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은 수 세기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아르키메데스넓이부피를 계산하는 기술들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근래의 적분에 다양한 기여를 했다. 특히 천문학에서 천구에 있는 행성들의 위치를 기록하고 천체들 사이의 운동 관계를 그릴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것은 1500년동안 기하학적인 문제들의 주요한 발원지가 된다.

르네 데카르트좌표를 발견함과 동시에 대수학이 기하학에서 새롭게 부상하면서 평면, 곡선 등의 기하학적인 요소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는 17세기의 미적분학이 등장하는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나아가 이 시기에 발달한 원근법거리에 따른 변화보다 한 차원 높은 방향을 제시했다. 오일러가우스의 생각에서 출발한, 기하학적 대상들(geometric objects)의 내재적 구조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하학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고 위상수학미분기하학을 창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는 물리적인 공간과 기하학적인 공간 사이의 특별한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19세기 이후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견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다. 20세기에 수학 체계가 정립됨에 따라 , , 평면 등의 공간들이 그 직관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물리공간과 기하학적인 공간, 추상적인 공간을 분리하게 되었다. 근래의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보다 더 추상적이며, 작은 크기에서만 비슷한 공간다양체를 연구한다. 이것은 공간길이를 탐구하는 등 공간을 좀 더 구조적으로 볼 수 있도록 기여하였다. 현대의 기하학은 물리학과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 극히 최근의 끈 이론에서는 기하학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고대 문명의 기하학[편집]

고고학적 유물을 통하여 확인된 가장 오래된 수학은 고대 이집트 문명바빌로니아 문명의 것으로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하학적 지식이 축적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 문명의 경우 기원전 16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메스 파피루스가 당대의 수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여기에는 각종 도형의 넓이와 입체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이 적혀 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달리 바빌로니아 문명의 흔적은 점토판으로 남아 있다. 특히 YBC 7289로 불리는 기원전 1800년에서 기원전 1600년 사이의 점토판은 당시 바빌로니아 인들이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를 상당한 정밀도로 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길이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 발달된 기하학을 이용한 결과였다.

YBC 7289 점토판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편집]

측량과 측정 기술로서의 실용적 기하학은 고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여러 문명에서 발전하였으나, 도형이 가진 내재적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의 기하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하였다. 그리스 인들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논증을 통하여 기하학을 체계적인 학문으로 쌓아 올렸다. 그리스 일곱 현인 중의 한 명인 탈레스(Thales)는 이러한 관점에서 기하학을 논한 최초의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탈레스의 수학은 이집트의 수학으로부터 시작하였지만, 이집트의 실용 기하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을 많이 발견하였다. 닮음비도 그 가운데 하나로, 그가 닮은 삼각형을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잰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는 이밖에도 자신의 이름이 붙게 되는 여러 가지 수학적 정리를 남겼다.

고대 그리스 기하학의 특징을 보여주는 예로 두 맞꼭지각의 크기가 같음을 증명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특정한 맞꼭지각의 크기를 직접 재어서 두 각이 같음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논증을 통하여 어떤 맞꼭지각이든 그 크기는 언제나 같을 수밖에 없음을 보이는 것이 그리스의 기하학이었다. 이 증명 또한 탈레스의 발견이라고 전해진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또한 고대 그리스 수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수학자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자체는 고대 여러 문명에서 알고 있던 지식이었지만, 처음으로 수학적 증명에 성공한 인물이 피타고라스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엄밀한 기하학적 논증은 기하학 자체뿐 아니라 수의 성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최초로 무리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 기하학이 정점에 이른 것은 유클리드의 저작 원론에 이르러서였다. 그는 그때까지 그리스 수학자들이 이루었던 성과를 13권의 원론에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23개의 정의와 5개의 공준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정리들을 이끌어내는 원론의 전개 방식은 이후의 수학 서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근대의 기하학[편집]

데카르트는 근대 기하학의 아버지이다. 이후 뉴턴이 바통을 터치 받았다. 미분과 적분은 기하학을 해석한 것이다. 해석 기하학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우선권 논란을 벌였다.

현대의 기하학[편집]

유클리드 기하와 비유클리드 기하학[편집]

유클리드 기하학[편집]

유클리드 기하학(-幾何学, Euclidean geometry)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에 의해 구축된 수학 체계로, 다음의 공준을 만족한다.

유클리드 공준[편집]

  1. 임의의 점과 다른 한 점을 연결하는 직선은 단 하나뿐이다.
  2. 임의의 선분은 양끝으로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3. 임의의 점을 중심으로 하고 임의의 길이를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4. 직각은 모두 서로 같다.
  5. 평행선 공준: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직각(180˚)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할 때 2직각보다 작은 내각을 이루는 쪽에서 반드시 만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편집]

비유클리드 기하학유클리드 공간이 아닌 공간에서 다루는 모든 기하학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로, 쌍곡기하학, 타원기하학, 절대기하학, 택시기하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클리드 공간에서는 "한 직선과 그 직선 위에 있지 않은 점이 주어졌을 때, 그 직선과 평행하고 그 점을 지나는 직선은 하나이다"라는 평행선 공리가 성립하나, 비유클리드 기하에서는 이 공리가 성립하지 않는 공간을 다룬다.

형식주의적 기하학[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