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클레이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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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클레이데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부분). 에우클레이데스가 컴퍼스를 잡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에우클레이데스(Ευκλείδης, 기원전 365년 경 ~ 기원전 275년 경) 또는 영어식으로 유클리드(Euclid)는 자주 "기하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그리스의 수학자이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재위 (323–283 BC) 동안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원론》은 수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의 하나로, 출판된 뒤부터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까지 수학, 특히 기하학을 가르치는 데 주 교과서로 쓰였다.[1][2][3] 유클리드 기하학[4]이라고 불리는 기하학의 정리들이 작은 공리로부터 출발하여 연역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해 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생애[편집]

유클리드의 삶에 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고, 그에 관한 소량의 언급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에 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언급마저도 그가 살았던 세기 후에야 프로클로스알렉산드리아의 파푸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프로클로스는 5세기에 쓰여진 그의 저서 《주석이 달린 원론》을 통해 유클리드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에우클레이데스는 콜로폰의 헤흐모티무스나 멘데의 필리푸스보다 젊지는 않았다. 그는 원론을 집대성하여, 많은 에우독소스의 정리들을 모았고, 테아이테투스의 정리를 완성하였으며, 선배들이 막연하게 증명하였던 것들을 확고하게 증명하여 보였다. 이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시대에 살았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바로 이후 세대인 아르키메데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더욱이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에우클레이데스에게 '기하 원론을 배우는 지름길이 있나?'하고 묻자 '기하에 왕도는 없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들보다는 어렸고 에라토스테네스나 아르키메데스보다는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에라토스테네스는 어디에선가 에우클레이데스와 동시대 인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원론》[편집]

유클리드의 가장 유명한 저서는 《스토이케이아》 13권으로 한국어로는 《기하학 원본》 또는 《유클리드 원론》으로 불린다. 기하학정수론을 다뤘는데 내용 중 많은 부분은 그 이전의 수학자들에게도 이미 알려졌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클리드 원론》이 수학사의 고전이 된 이유는 일정한 공리에서부터 결과를 이끌어내는 논리적인 전개였다. 공리 체계에 바탕을 둔 근대 수학은 《유클리드 원론》에 근원을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클리드 원론》에 나오는 두 개의 정수의 최대공약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은 지금도 유클리드 호제법이라고 불린다.

기하학에 왕도는 없다.

—에우클레이데스

같이 보기[편집]

주석 및 참고 문헌[편집]

  1. Ball, pp. 50–62.
  2. Boyer, pp. 100–19.
  3. Macardle, et al. (2008). Scientists: Extraordinary People Who Altered the Course of History. New York: Metro Books. g. 12.
  4. 유클리드의 기하학은 수백년 동안 순수한 기하학 그 자체로 여겨졌으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지금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