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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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계

출생 1562년 4월 24일
상하이
사망 1633년 11월 10일
상하이
사인 병사
거주지 상하이
국적 명나라
별칭 세례명 바오로
자는 자선, 호는 현호
학력 한림원
직업 예부상서
종교 로마 가톨릭
배우자 오씨 부인
자녀 아들 서기
부모 아버지 서사성

서광계(중국어 간체: 徐光启, 정체: 徐光啓, 병음: Xú Guāngqǐ 수광치[*], 1562년 4월 24일~1633년 11월 10일)는 중국 명나라 후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이다. 상하이에서 출생했다. 자는 자선(子先), 호는 현호(玄扈), 세례명바오로이다. 이지조, 양정균과 함께 그 당시의 뛰어난 엘리트였다.

로마 가톨릭과의 만남[편집]

1600년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하는 마테오 리치를 처음 만났고, 1603년에는 그에게 세례를 받아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해 천문학수학을 배웠다. 그는 한림원의 서길사로 있으면서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포교서와 유럽의 역서 등을 번역하고, 양학을 철저히 연구하여,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마테오 리치와 함께 번역하여 《기하학 원본》 전 6권을 간행하였다.

팡토자를 도와 조선에도 읽힌 로마 가톨릭 교의 해설서《7극(克)》을 저술하였으며, 또 서양의 천문학 책을 번역하여 《숭정 역서 崇禎曆書》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여파로 《농정 전서 農政全書》(전 60권)를 만들어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농학자의 주장을 모두 분류하는 등 중국 문화에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1623년 예부 우시랑이 되었으나 책모에 의해 물러났다. 1628년 다시 기용되어 좌시랑·상서 등을 역임하였다. 로마 가톨릭의 전교에도 공이 크며, 한림원의 서길사로 있을 때 선교사들과 함께 상하이교회·병원·고아원·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조선에 끼친 영향[편집]

서광계의 저서 다수가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의 실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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