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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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국립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信念)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信仰), 신심(信心), 신앙심(信仰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식론[편집]

지식과 믿음은 큰 상관 관계가 있으나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태양이라고 믿는 사람은 태양이 신임을 안다고 주장할 것이나 그러한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진리가 아닌 잘못된 지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철학지식과 믿음을 별개의 개념으로 다룬다.

지식과 믿음을 다루는 철학의 분야는 인식론이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테타이테토스》에서 지식이란 참으로 판단된 믿음이라 정의(定意)하였다.

과학[편집]

지식에 대한 인식론의 정의는 과학에 도입되어, 과학은 경험적 지식만을 다루며 입증될 수 없는 믿음은 논의에서 제외한다.

심리학[편집]

사회심리학에서는 개인의 특정한 믿음이 사회 관계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거나, 고정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종교[편집]

종교에서 믿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도 불리며 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나 교리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 계율과 같은 종교적 규범, 성지와 같은 특정한 장소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된다. 원시 시대에는 한 집단에 속한 남녀 모두가 임신과 출산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생식이 초지상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그들 집단에서는 첫 번째 전제가 되었다.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전해져 몇 세대 동안이나 사람들의 관념 속에 수호신으로 생생하게 자리잡아 숭배된 토템 외에, 밤이나 낮이나, 그들이 어디에 있든 자연의 신비한 힘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한 힘을 이해하고 또한 자신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이미 원시인들은 이러한 선악의 힘들을 인간화하고, 초자연적으로 위대해진 인성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연의 힘을 신으로 드높였다.[1]

기독교[편집]

믿음이란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믿음은 반드시 대상이 있다. 기독교에서 믿음은 예수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믿음이 성장할 수록 점점 예수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여지고, 삶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야훼의 은혜의 선물로 이해해야 하며,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한편 기독교에서 신앙 또는 믿음(faith)이란 낱말에 대한 정의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곤 한다. 계통적 서술에 의하면 히브리서에 있는 "희망하는 것에 대한 확신, 보지 않은 것에 대한 확신"으로 본다.[2] 대부분의 기독교 이론들이 역사적으로 이 성경적 서술을 따라왔다. 다른 아브라함계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믿음을 포함하여 신이 그의 자비로운 의지, 또는 인간에 대한 계획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세계에 대해 관리한다는 - 현실을 초월한 영역을 실제로 믿음을 포함한다.

기독교가 다른 아브라함계 종교와 구분되는 것은 예수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그가 고난과 부활에 의해 입증된 예원된 구원자(그리스도, 크라이스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신약성서의 믿음에 포함되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대부분 전통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믿음)은 예수가 그의 아버지 성령에 의해 부활했음을 믿는다.[3]

정확한 “믿음”이란 단어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기독교 교파의 전통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은 보편적으로 예수가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이러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공통점을 보인다. 기독교의 전통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매우 중심이 되기 때문에 “믿음의 종교”라 불리기도 한다. 신앙 또는 믿음(faith)과 믿음(belief)이란 개념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사람’으로 간주되듯 빈번히 동의어로 여겨진다.

불교[편집]

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믿음(信)은 그 정의가 단순히 특정한 교의 또는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4]

부파불교설일체유부대승불교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믿음은 마음이 청정한 것이다. 즉, 청정(清淨)은 믿음의 다른 말이다.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믿음 또는 청정은 (業) · (果) · 진리[諦] · 보배[寶]와 지극하게 서로 계합하고 따르는 상태[極相符順]를 말한다. 또는 이러한 계합의 상태를 가능하게 하는 청정한 마음 혹은 이러한 계합의 상태가 일어나고 있을 때의 바로 그 청정한 마음을 말한다.[5][6][7][8] 그리고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청정한 마음 또는 맑은 마음믿음심정(心淨: 마음이 맑음, 마음이 깨끗함, 마음이 청정함) 또는 심징정(心澄淨: 마음이 맑고 깨끗함)이라 한다.[5][6][9][10]

부파불교대승불교믿음(信)에 대한 정의와 설명들에서 다른 공통되는 사항은, 믿음(信)은 모든 (善)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항상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심소법)이며,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며, 열반에 이르는 길로서의 불도(佛道)로 들어가는 첫걸음이 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이다.[11]

기타[편집]

무비판적인 믿음에 대해 비유적인 비판의 용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 문헌[편집]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49(25-149), T.1542(26-692)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대승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8(17-637), T.1612(31-848)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619(17-641), T.1613(31-850)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불교 사전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 (중국어)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42, CBETA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 (중국어)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주석[편집]

  1. 파울 프리샤우어 [1968] (1991년 1월 15일). 《세계풍속사(상)》, 이윤기 번역, 서울: 도서출판 까치, 22쪽. ISBN 89-7291-011-2 “한 집단에 속한 남녀 모두가 설명할 수 없는 초상적인 생식력 덕분에, 생을 누릴 수 있다는 신앙이 그들 집단에서는 첫 번째 전제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전해져 몇 세대 동안이나 사람들의 관념 속에 수호신으로 생생하게 자리잡아 숭배된 토템 외에, 밤이나 낮이나, 그들이 어디에 있든 자연의 신비한 힘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 유쾌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한 힘을 이해하고 또한 자신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이미 원시인들은 이러한 선악의 힘들을 인간화하고, 초자연적으로 위대해진 인성을 부여했다. 그들은 자연의 힘을 신으로 드높였다.”
  2. Cf. "Faith". Encyclopaedia Britannica. 9. London-Chicago-Geneva-Sydney-Toronto: W. Benton. 1964. p. 40.
  3. The importance of a belief in the resurrection is substantiated in several ways: (1 Corinthians 15:1-4) '... the gospel I preached to you... Otherwise, you have believed in vain...'. The same book says, in 15:14: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our preaching is useless and so is your faith" (see also Acts 2:32; Philippians 3:10; John 11:25).
  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pp. 164 / 1397.
  5. 세친 조, 현장 한역 (T.1612), p. T31n1612_p0848c21 - T31n1612_p0848c22. 신(信). 
    "云何為信。謂於業果諸諦寶中。極正符順心淨為性。"
  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618, T.1612), p. 3 / 12. 신(信). 
    "어떤 것이 신(信)인가. 업(業)과 과(果), 모든 진리[諦]와 보배[寶] 등에 대해 지극히 바르게 부합하여 마음이 청정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7.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T.1613), p. T31n1613_p0852a10 - T31n1613_p0852a16. 신(信). 
    "云何信。謂於業果諸諦寶等。深正符順。心淨為性。於業者。謂福。非福。不動業。於果者。謂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果。於諦者。謂苦集滅道諦。於寶者。謂佛法僧寶。於如是業果等。極相符順。亦名清淨。及希求義。與欲所依為業。"
  8.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K.619, T.1613), p. 7 / 24. 신(信). 
    "무엇을 믿음[信]이라고 하는가?
    업 · 과보 · 모든 진리[諦] · 보배 등에 대하여 깊고 바르게 따르는 마음의 청정함을 성질로 삼는다. 업에 대하여 복(福) · 복이 아님(非福) · 부동업(不動業)을 말한다. 과보에 대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과보를 말한다. 진리에 대하여 괴로움의 진리[苦諦] · 집착의 진리[集諦] · 집착을 없애는 진리[滅諦] · 깨달음에 이르는 진리[道諦]이다. 보배에 대하여 불보(佛寶) · 법보(法寶) · 승보(僧寶)의 삼보이다. 이와 같은 업 · 과보 등에 대하여 지극히 맞게 따르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한다. 간절히 바라는 뜻에 이르러서는 바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9.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19 - T26n1542_p0693a20. 신(信). 
    "信云何。謂心澄淨性。"
  10.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제1권. p. 5 / 448. 신(信). 
    "신(信)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맑고 깨끗한 성품[澄淨性]이다."
  11. 星雲, "". 2012년 9월 26일에 확인.
  12. 과학의 경우 「과학 신앙」 「과학 숭배」또는 「과학 주의」등으로 불린다. 의료의 경우 「의료 신앙」라고 불리는 게 보통.
  13. 「학력 신앙」이나 「학력 숭배」라고 불리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