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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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트 스펜서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 영어: Social Darwinism)은 19세기 찰스 다윈이 발표한 생물진화론에 입각하여, 사회의 변화와 모습을 해석하려는 견해으로 허버트 스펜서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역사[편집]

사회진화론적 생각은 18세기 유럽 사회에서는 매우 일반적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계몽사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헤겔과 같은 철학자나 사상가는 사회는 거듭하면 할수록 더욱 발전한다고 보았다. 허버트 스펜서 이전에 사회진화론적 의견을 가졌던 이들은 사회 본연의 모습을 투쟁임을 강조하였다.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범우주적인 법칙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사회학은 사회의 진화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주장했다.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의 생물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사회는 단순한 상태에서 진화하여 더욱 복잡한 형태로 된다고 보았다. 또한,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생물이 진화하면서 몸의 기능이 분화하거나 통합하는 것처럼, 사회도 발전하면서 그 기능이 분화하거나 통합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물진화론의 적자생존처럼, 사회도 적자생존의 원칙에 적용된다고 보았다.

사회진화론이 미국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44년 미국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저서 《Social Darwinism in American Thought》때문이었으며, 그 이후 사회진화론을 분석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들은 주로 사회진화론을 옹호하는 견해보다는 비판하는 시각이 강했다.

세계에 끼친 영향[편집]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 사회에서 사회진화론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사회진화론은 20세기 초에 영국의 거대한 사회 변화의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로이드 조지처칠라운트리의 보고서에 근거하여 사회 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이 보고서는 요크 지방의 빈곤층을 중심으로, 왜 빈곤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한지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빈곤층이 가난한 원인을 게으르고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는 틀리다는 시각을 확대하였고, 나아가 영국의 정치를 빈곤층들의 복지에 중점을 두게 하였다. 이러한 사회 변화는 적자생존에 관한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진화론은 일본에 전달되어 교육 풍토를 바꾸는 원인이 되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양무운동이 실패하고 나서 중체서용의 한계를 느낀 캉유웨이 등은 사회진화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법과 제도까지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는 변법자강운동을 실시하였다.

한국에 끼친 영향[편집]

조선도 1880년 이후 사회진화론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등장한 대한제국 때에는 학술 잡지나 신문 등에 사회진화론에 대한 글이 많이 생겨났으며 유길준, 윤치호 등은 사회진화론을 적극 받아 들였다. 사회진화론이 전래 되면서 부국강병과 계몽 운동을 위한 여러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가는 까닭을 국민이 무지하고, 나라가 약하다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설과 약육강식을 기본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은 찬반 양론이 나뉘게 되었다. 사회진화론에 찬성한 인물로는 윤치호, 유길준, 서재필, 박중양, 안창호, 김규식, 이범석, 안호상, 이광수 등이었고, 사회진화론을 부정한 인물로는 이승만, 장면, 윤보선, 김성수, 장덕수 등이 있었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계몽 운동을 통한 국민 교육과 강한 군사를 실시하고, 자주적이고도 독립적인 국가로 거듭나고자 하였다. 하지만 사회진화론은 일부 지식인들이 자국의 사회적 수준이 일본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에 스스로 독립 의지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으며, 실제 이에 따라 변절한 이들도 있었다. 이광수와 같이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가 후에 사회진화론으로 말미암아 열등감을 느껴 철저한 친일파로 변절한 것이 예이다.

사회진화론이 유교적 사상에 끼친 영향 또한 컸다. 그 당시에는 사회는 갈수록 퇴보하고 타락하기 때문에 예전의 이상 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유교적 사상이 일반적이었는데, 사회는 갈수록 진화한다는 사회진화론은 사회를 퇴보한다고 규정한 유교적 인식을 밖으로 몰아세웠다. 따라서 현실을 인식하는 체계 자체가 차차 바뀌어 갔고. 이런 성향은 지식인들에게 계몽에 대한 의지를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