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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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
日本共産党
Japanese Communist Party logo.gif
약칭 JCP
대표 시이 가즈오
창당 1922년 7월 15일
중앙 당사 일본 도쿄 도 시부야 구
당원 415,000 명(정규 당원 25만 명)
이념/정치노선 사회주의
민주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유럽공산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좌익
국제조직 코민테른(1922년 ~ 1943년)
상징색 적색
웹사이트
http://www.jcp.or.jp/

일본공산당(일본어: 日本共産党)은 1922년 7월 창당한 일본의 정당이다. 정당 대표는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인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다. 현재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에 이어 원내 진입을 한 원내 제4당으로, 2013년 기준으로 참의원 11석, 중의원 8석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젊은이들이 매달 1000명씩 공산당에 입당하고 있다.[1]

역사[편집]

1922년 국제 노동운동 단체인 코민테른에 참여한 일본인 공산주의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일본 천황제 폐지와 제국주의 활동 철폐를 주장하는 정당이었고, 1925년 치안유지법으로 다수의 인사들이 탄압을 당했다. 이러한 탄압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 1945년 12월 합법화된 정당으로 새롭게 발족하였다. 1955년 이후에는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일본공산당 관련 노동자에 대한 해직 조치, 추방 등의 탄압을 받았다. 일본공산당은 구 소련이나 북한공산주의와 달리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일본침략전쟁에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우선적인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북한과는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사건을 계기로 교류가 단절된 상태이다. 지금은 적극적 지지자 약 500만 명, 당원수 약 40만 명을 보유한 주요 정당으로 성장했으며[2],일본 우파들의 신 군국주의화와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요요기파와 반요요기파[편집]

1960년-70년대 일본에서는 '정치의 계절'로 불릴 만큼 학생운동, 시민운동(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운동 등)이 활발하였는데, 일본공산당도 학생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은 일본공산당의 지도여부에 따라, 요요기계(代代木界)와 반 요요기계(反代代木界)로 나뉘었는데, 요요기라는 말은 일본공산당 본부가 있었던 도쿄 요요기(代代木)에서 유래한다.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은 요요기파는 비폭력, 의회주의성격의 온건 학생운동이었고, 반 요요기파는 폭력, 혁명, 가두투쟁성격의 급진파였다.[3]

경제난 속 입당 붐[편집]

공산당 당원은 1990년 50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994년에는 40만명 안팎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 사이에 약 1만4천명이 새로 입당했다.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구독자도 2008년 5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이 기간 신규 구독자도 2만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공산당 가입자가 증가한 것은 경기 악화로 속출한 실직자들이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기존 주요 정당에 대해 반감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이러한 당원수 증가가 곧바로 공산당의 세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2009년 1월 9~11일 전국 성인남녀 1천68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산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1%였다. 다른 당은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이 각각 29.3%, 26.9%, 3.3%의 응답을 보였다.[4]

주석[편집]

  1. 일본 젊은이들 "매달 1000명씩 공산당 입당"…왜?
  2. 한겨레21 2006년 9월13일 제627호“아베의 시대착오 용납 못한다”-일본 공산당 대표로선 최초로 한국 방문한 시이 가즈오 간부위원장
  3.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2장:사사로운 나의 역사/와시오 켄야 지음/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p.28
  4. 연합뉴스 2009년 1월 12일 경기악화로 日 공산당 인기..득표력 과제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