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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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칭 | JCP |
|---|---|
| 대표 | 시이 가즈오 |
| 창당 | 1922년 7월 15일 |
| 중앙 당사 | 일본 도쿄 도 시부야 구 |
| 당원 | 415,000 명(정규 당원 25만 명) |
| 이념/정치노선 | 과학적 사회주의 유럽공산주의 |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 원내교섭단체 | 코민테른(1922년 ~ 1943년) |
| 상징색 | 적색 |
| 참의원 |
6 /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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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의원 |
9 /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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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역자치단체장 |
105 / 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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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자치단체장 |
2,661 / 32,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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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
| http://www.jcp.or.jp/ | |
일본공산당(일본어: 日本共産党)은 1922년 7월 창당한 일본의 정당이다. 정당 대표는 일본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회 위원장인 시이 가즈오 위원장이다. 현재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에 이어 원내 진입을 한 원내 제4당으로, 참의원 7석, 중의원 9석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젊은이들이 매달 1000명씩 공산당에 입당하고 있다.[1]
목차 |
역사 [편집]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는 천황제에 반대하여,1955년 이후에는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일본공산당 관련 노동자에 대한 해직 조치, 추방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45년 12월 합법화된 정당으로 새롭게 발족하였다. 일본공산당은 구 소련이나 북한의 공산주의와 달리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우선적인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북한과는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사건을 계기로 교류가 단절된 상태이다. 지금은 적극적 지지자 약 500만 명, 당원수 약 40만 명을 보유한 주요 정당으로 성장했으며[2],일본 우파들의 신 군국주의화와 역사왜곡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요요기파와 반요요기파 [편집]
1960년-70년대 일본에서는 '정치의 계절'로 불릴 만큼 학생운동, 시민운동(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운동 등)이 활발하였는데, 일본공산당도 학생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학생운동은 일본공산당의 지도여부에 따라, 요요기계(代代木界)와 반 요요기계(反代代木界)로 나뉘었는데, 요요기라는 말은 일본공산당 본부가 있었던 도쿄 요요기(代代木)에서 유래한다.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은 요요기파는 비폭력, 의회주의성격의 온건 학생운동이었고, 반 요요기파는 폭력, 혁명, 가두투쟁성격의 급진파였다.[3]
경제난 속 입당 붐 [편집]
공산당 당원은 1990년 50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994년에는 40만명 안팎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7년 9월부터 2008년 12월 사이에 약 1만4천명이 새로 입당했다.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구독자도 2008년 5월 이후 8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이 기간 신규 구독자도 2만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공산당 가입자가 증가한 것은 경기 악화로 속출한 실직자들이 자민당이나 민주당 등 기존 주요 정당에 대해 반감을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이러한 당원수 증가가 곧바로 공산당의 세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2009년 1월 9~11일 전국 성인남녀 1천685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산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1%였다. 다른 당은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이 각각 29.3%, 26.9%, 3.3%의 응답을 보였다.[4]
바깥 고리 [편집]
- (일본어/영어) 일본공산당 홈페이지
주석 [편집]
- ↑ 일본 젊은이들 "매달 1000명씩 공산당 입당"…왜?
- ↑ 한겨레21 2006년 9월13일 제627호“아베의 시대착오 용납 못한다”-일본 공산당 대표로선 최초로 한국 방문한 시이 가즈오 간부위원장
- ↑ 《편집이란 어떤 일인가》-2장:사사로운 나의 역사/와시오 켄야 지음/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p.28
- ↑ 연합뉴스 2009년 1월 12일 경기악화로 日 공산당 인기..득표력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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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파 | |
| 비회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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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 ) 안은 각 회파의 의석 수로서, 정당 자체의 의석 수와는 차이가 있음. (2013년 3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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