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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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우파(Christian Right) 또는 기독교 보수주의미국에서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정치에 끌어들이기 위한 초교파적 사회운동[1]을 뜻하며, 한국에서도 반공주의친미주의, 창조론 찬양 등의 보수적인 정치이념을 갖고 있고, 초교파적인 기독교 정치, 사회운동을 뜻한다.

미국 기독교 우파의 역사[편집]

미국 기독교 우파는 크게 세 분류로 나뉜다.

이들은 1990년대이후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한국교회도 그렇지만, 소위 보수 기독교인들은 자신과 다른 신앙이나 타 교파를 배척하거나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보는 종파주의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교파적인 기독교 사회운동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하느님의 세계와 세상을 구분짓는 이원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교회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보수 기독교계의 정치운동은 상당히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진화론 반대운동[편집]

이미 1920년대부터 근본주의 성격의 보수 기독교인들은 공립학교내 진화론 교육반대운동을 통해 사회문제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미 성서동맹(Bible League of North America), 미국 성서 십자군(Bible Crusaders of America), 기독교 신앙수호자(Defenders of Christian Faith)등의 기독교단체를 결성하여 대중집회, 진화론반대법 제정운동등을 했으며, 1925년에는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법정투쟁이 벌어지기에 이른다. 이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진보 기독교인들과의 대립에 의한 것이었다. 1920년대 진보 기독교계에서는 진화론을 받아들였는데, 이에 대해 보수 기독교계에서 진화론을 가르친 고등학교 생물학 선생 스코프스를 법정에 세움으로써 대항한 것이다. 스코프스 교사를 법정에 세운 보수 기독교인들의 논거는 공립학교내 진화론교육을 금지하는 버틀러법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당시 법정에는 진보 기독교계 인사인 클레리언스 대로우 변호사와 보수 기독교계 인사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검사가 논쟁을 벌였는데, 당시 이들의 대화내용을 일부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 대로우 변호사:당신은 성서의 모든 내용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 브라이언 검사:성서의 모든 내용은 그 자체로 해석해야 한다고 믿소. 어떤 성서의 내용은 그 자체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소. 어떤 성서의 내용은 본보기로 주어진 것이오.
  • 대로우 변호사:"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창세기 1:4-5/표준새번역)는 구절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 브라이언 검사:나는 그것을 꼭 24시간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기간을 가리키는 것 같소.
  • 대로우 변호사:그 기간이 무엇을 뜻하느냐는 말입니다.
  • 브라이언 검사:대로우 씨의 유일한 목적은 성서를 모독하는 거요!
  • 대로우 변호사:이의 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지능이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믿을 수 없는 당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거론하는 것이오![2]

결국 스코프스는 버틀러법 위반혐의로 1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이후 보수 기독교계의 진화론 반대운동은 시들해졌다.

반공산주의운동[편집]

반진화론 운동이 시들해지자, 기독교 우파들은 반공주의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그리스도 세력과 적 그리스도세력이 마지막 전쟁을 벌인다는 성서내용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옛 소비에트 연방을 적 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독교 우파들의 편협하고 독선적인 모습은 기독교인들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 더구나 1929년 미국 경제 대공황 시작으로 1930년대 미국인들은 일자리를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종교에 관심을 보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957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공산주의자들이 미국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매카시즘을 주장하면서 벌어진 매카시 광풍으로 미국 보수 기독교인들은 다시 정치활동에 가담한다. 이들은 기독교 십자군(Christian Crusaders), 기독교 반공산주의 십자군(Christian Anti-Communist Crusade), 교회연맹(Church League)를 결성했으며, 비종교세력과 연합하여 사회복지제도를 반대하거나, 우파성향의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일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이성을 되찾으면서 매카시 광풍은 소멸되었고, 1960년대에는 전통에 대한 반란과 반전운동이 미국사회에서 유행하기까지 하면서 보수 기독교인들은 정치에 개입할 명분이 없게 되었다.

미국 공화당과의 만남[편집]

1970년대말 미국 공화당은 보수 기독교인들과 결탁하는데, 당시 공화당은 기독교인의 소리(Christian Voice),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등의 보수 기독교단체들을 활성화시켰다. 특히 침례교 목사 제리 폴웰이 주도한 도덕적 다수는 레이건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때부터 보수 기독교인들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다수 복음주의 교회들은 도덕적 다수에 대해 좋게 보지는 않았는데, 이는 미국 기독교계에서 도덕적 다수를 지지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대 미국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정견[편집]

1980년대 미국 보수 기독교단체들의 정치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980년대말-1990년대이후[편집]

1980년대 말 이후 미국 기독교 우파운동은 미국 침례교 설교자 팻 로버트슨(Marion Pat Robertson)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미국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개신교교회를 아우르는 교계인사 접촉을 하고 있는데, 그 실례로 그는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역사적 계승(사도적 계승)이라는 점에선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고, 예전에서는 성공회 신자이며,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장로교회 신자이며, 거룩성에서는 감리교회 신자이며, 신자들의 사제직과 세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침례교회 신자이다. 또한 성령세례를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오순절 교회신자이다.

이렇듯 자신을 모든 교파를 수용할 수 있는 관대한 사람인 것처럼 미화하는 언변은 미국 기독교 우파운동이 초교파적인 사회운동으로 성격이 바뀌게 하였다. 1989년에는 기독교 우파운동의 중심세력인 기독교 연합(Christian Coalition)을 조직하였으며, 자신을 2000년에는 공화당 후보를 대선에 당선시킨다는 계획을 세워, 성사시켰다. 2000년 대선당시 조지 W. 부시가 기독교 우파로부터 40%의 표를 받아낸 것이다.

1990년대 기독교 우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기독교 근본주의보다는 온건한 복음주의가 득세한다.
  • 초교파적 입장이 강화되고 있고, 종파주의[3] 가 약세이다.
  • 선거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낸다.
  • 자본과 조직력 모두 우수하다.
  • 세속적인 홍보수단도 사용하며, 비종교적 정치언어도 사용한다.
  • 비 기독교인들도 공감이 가도록 말한다. 기독교인 자녀들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하므로 공립학교내 종교교육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대표적인 미국 기독교 우파들의 논리이다.
  • 조지 부시 현 미국 대통령 당선에 기여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
  • 이웃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 실례로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제리 폴웰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인 자들로 악명이 높다.
  • 국수주의 성향이 있다. 제리 폴웰은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하느님이 미국을 보호하던 손을 거두었다"면서, 미국이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신정국가인양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기독교 우파[편집]

한국의 기독교 우파는 매카시즘 성격의 반공주의친미주의가 특징이다.

반공주의[편집]

한국 보수 기독교계의 반공주의는 1920년대부터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4]1920년대 조선에는 사회주의가 새로운 이념으로 들어오는데,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은 미신에 빠져 있으며, 항일의식을 약화시킨다. 또한 자본주의제국주의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5]라면서 기독교인들의 잘못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국 기독교는 사회주의자들을 '그리스도복음'으로 이끌고, 교회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는 교회개혁을 하기보다는 그들을 배척하였다.[6]사실 이러한 비판은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만 지적한 편견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한국 기독교에도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이 있다. 1920년대 한국교회는 농촌경제가 무너지는등의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하여, 이에 실망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 사회주의자가 되는 일이 많았다.뿐만 아니라, 선교사들도 도덕적인 수준이 낮아서, 폭언, 구타, 성추행 등의 물의를 일으켜, 구세군 사관학교, 정명여학교 등의 기독교학교에서 선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심지어는 허시모 사건이라고 해서 미국 안식교 선교사 허시모(C.A Haysmer)가 1925년 9월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훔친 어린이의 양쪽 볼에 초산은으로 도적이라고 쓰는 바람에, 허시모 자신은 재판을 받고, 언론에서는 선교사들의 백인우월주의를 비판했다.[7] 지식인들도 당시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문인 이광수는 1920년 《금일 조선예수교회의 문제점》에서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한다.

  1. 조선교회는 너무 권위적이고 계층적이다.
  2. 조선 교회는 세상과 교회를 너무 이분화해서 교회에만 치중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인 세상일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는 외면한다.
  3. 상당수 개신교 목사들의 수준이 형편없다.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신앙들이 너무 많다. 기도가 만병통치약인 줄 안다. 한민족을 계몽하자면서 미신적 신앙을 전수하니 이게 웬 말이냐?
  4. 조선교회는 개신교천주교 모두 합쳐서 100년이 넘는 선교역사를 가졌는데, 어째 조선에는 제 소리 하나 없이 다 가져온 것이냐? 조선의 그리스도인들은 정체성(자주성)이 없다.
  5. 선교사들과 그들이 인정하는 몇몇 개신교 목사들이 성서 해석의 독점권을 가졌다. 다양하고 자발적인 성서를 연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6. 조선의 기독교는 감정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신비적인 체험만을 강조한다.

심훈도 자신의 대표작 《상록수》에서 박동혁의 입을 빌려서, "조선 예수교회는 권세에 아첨을 허다 못해 무릎을 꿇구, 물질과 타협을 허다 못해 돈 있는 놈의 주구(走狗), 자본주의에 아부하는 타락한 종교"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한국교회를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했고, 한국교회에서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회주의계를 배척하면서 한국교회에는 반공주의라는 뿌리가 싹트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해방후에도 계속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권을 적그리스도, 기독교도들을 억압하는 반 기독교세력이라고 비방하기에 이른다. 실례로 한국 감리교회에서는 《이북 감리교도에게 보내는 멧세이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철의 장막속에서 신앙의 자유를 잃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신음하고 있는 형제들을 생각할때에 우리의 눈시울이 뜨거워짐은 금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반공주의는 보수 기독교계의 사회참여를 방해했다. 그 실례로 1970-80년대 진보 기독교계에서는 도시산업선교회등을 결성,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을 도왔는데 이를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용공운동이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의 반공주의는 1988년 기독교계 일부에서 반성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회 선언》[8]이다. 당시 선언내용에서는 한국교회가 분단으로 인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느님 말씀(마태 복음서 22:37-40)를 어기고, 남·북한 그리스도인 모두 체제에서 강요하는 이념우상화한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였다. 또한 반공주의로 인해 동포를 미워한 죄(요한 복음서 13:14-15, 4;20-21)를 고백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반공주의를 뛰어넘어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일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으나, 지금도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한국사회는 좌파가 만연해 있다"라는 식의 매카시즘적인 반공주의성향이 있다.

친미주의[편집]

한국 개신교 교회는 주로 미국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친미의식이 있다. 실례로 친미 성향의 보수 개신교신자들은 미국청교도들이 세운 개신교 국가로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고 동경하거나, 미국 선교사들을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친미주의는 북한의 남침으로 벌어진 한국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남한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하면서 더욱 뿌리깊게 한다. 하지만 미국이 신군부 즉,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광주학살에 대해 침묵을 지킨 사실에 대해 지식인들은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된다. 이전에는 혈맹의 우방으로 동경했으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면서 광주시민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광주학살에 대해 침묵하는 미국을 보며, "군사독재정권을 지원, 조종하는 제국주의적 국가"라는 비판적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교회내 소수에서도 갖고 있어서, 1982년 4월 15일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에서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에 대한 견해》라는 문서를 발표, 교회사회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다. 1984년9월에는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에서는 "우리는 한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에 의한, 평화적인 통일외에는 어떠한 통일도 참된 통일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로 대표되는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미국국기를 들고 미군철수반대를 주장하였으며, 미국의 패권주의에 동조하고 있다.

출처[편집]

  • 미국의 기독교 우파에 대한 기사는《기독교 사상2006년 3월호 '제국과 근본주의',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와 《5시간만에 읽는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저/작은행복을 근거로 작성하였습니다.
  • 한국의 기독교 우파에 대한 기사는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기독교사상》2005년 9월호, '무엇이 이 시대의 복음이고 선교인가'를 근거로 작성하였습니다.

주석[편집]

  1. 기독교 사상2006년 3월호 '제국과 근본주의', 양권석, 대한기독교서회, 216쪽.
  2. 《5시간만에 읽는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저/작은행복 p.258-260
  3. 자신의 교파외의 형제교회들에 대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종교적 독선을 말한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형제교회들인 로마 가톨릭교회, 성공회, 정교회 등에 대해 배타적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4.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p.199
  5. 네이버 백과사전의 반기독교운동 설명
  6. 《기독교사상》2006년 4월호, '한국교회와 과거사 고백-민주화시대이후의 한국교회', p.199
  7. 《기독교사상》2005년 9월호, '선교의 역사적 반성과 오늘의 방향성 모색' p.54
  8. 이 선언은 한국교회가 반공주의를 극복하고, 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상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에서는 2008년 88선언 기념예배를 성공회, 장로교, 구세군 등 회원교단들의 참여로 서울 경동교회와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집전하였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