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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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女性主義)(영어: feminism /ˈfɛməˌnɪzəm/)은 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다. '페미니즘'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여성운동가 혹은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였다.

여성주의는 여성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여성주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여성주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고, 이에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 상황은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사회 이론과 정치적 움직임 그리고 도덕철학을 포함한다. 사회 운동으로서 여성주의는 인간에 대한 차별의 일환인 성 차별을 종식시키고, 소외된 '여성의 권리와 이익 그리고 관심사'를 대중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에 집중한다.[1]

개요[편집]

학계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을 억압하는 젠더 불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인식(representation)·지위를 기술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 중 퀴어 이론의 분파에 속하는 이들은 젠더와 심지어 (sex)마저도 사회적 환상이라고 주장하며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하여 사회 관계를 이해하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한다.

몇몇 여성주의 학자들은 모든 형태의 위계 질서, 기업과 정부, 그리고 모든 형태의 단체에 존재하는 질서가 탈중앙화되고 극단적인 민주주의체제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 어떠한 조직이라도 집중화되어 있다면 이는 남근중심적 (androcentric) 가족 구조에 기반한 것이며 개혁하고 교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여성주의 학자들은 여성주의의 본질을 성과 젠더에 국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성주의 정치적 활동가들은 주로 재생산 권리 (낙태를 결정할 권리, 낙태에 대한 법적 제한의 제거와 피임에 대한 접근), 가정의 폭력, 임산부 휴가 (maternity leave), 동등한 임금, 성추행, 차별과 성폭력등을 포함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연구하는 분야들은 가부장제, 편견, 성적 대상화와 억압이 있다.

1960년대1970년대 여성주의와 여성주의 이론의 주축은 스스로 모든 여성의 대표라 여기는 서양 백인 중산층 여성의 문제만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다양한 제 3세계 등의 여성주의 사상가들은 "여성"이 균질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그룹이라는 전제를 문제시하였다. 새로운 조류를 타고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다양한 배경에서 출현하였으며 여성주의 이론가들은 젠더/섹슈얼리티와 타 사회 정체성들, 이를테면 인종이나 계급의 교차점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주의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며 사회적 계급과 인종, 문화와 종교에 기반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운동이며 문화적으로 지역화되었으며 해당 사회의 여성에게 중요한 문제를 대하고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이나 선발 자본주의 경제의 유리천장 현상) 그리고 특정 현상들, 이를테면 강간, 근친상간과 모성 (maternity)이 보편적인 이슈인지를 토론한다. 2006년 현재 수많은 여성주의 정당이 존재한다.

기원[편집]

현대적 의미의 철학과 운동으로서의 여성주의는 계몽 시대의 매리 워틀리 몬태규(Mary Wortley Montagu)나 콩도르세 후작(Marquis de Condorcet) 등의, 여성의 교육을 촉구하는 사상가들에게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785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남부 도시 미델베르흐(Middleburg)에서 여성을 위한 과학 협회가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과학 등을 다루는 여성 잡지들이 대중화 되었다. 매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여성의 여러 권리에 대한 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1792년)은 여성주의적 첫 저서 중 하나이다.

19세기 여성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기 시작함에 따라 여성주의는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하였다. 여성주의 운동은 특히 19세기 사회 개혁 운동(초기 사회주의 운동)에 근거하였다.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는 1837년 féminisme라는 단어를 도입하였다. 그는 이미 1808년 여성의 권리 신장이 모든 사회 진보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869년 존 스튜어트 밀은 "하나의 성이 타 성에게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 이는 인류 발전에 크나큰 장애가 되고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 여성의 대상화를 저술하였다. 여성주의적인 조직적인 첫 움직임은 1848년 뉴욕주의 Senecca Falls에서 열린 첫 여성 권리 컨벤션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부터 여성들의 권리 신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917년의 러시아 10월 혁명은 여성들의 정치적 권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의 러시아 혁명 정부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완전히 동등한 정치권을 주었으며, 가사노동이외의 사회 활동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도 마련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한 남성들을 대신하여 국내 산업노동의 큰 비중을 차지한 것 역시 여성들의 권리신장에 크게 기여한 요소이다.[출처 필요] 이를통해 여성들이 전례없는 자율성을 얻기 했지만 이러한조치(참정권 가사노동의 행방등)로 인해 여성들의 사실상의 독립에 따른 모성주의(모성을 국가의 공중보건과 세계적 경쟁력과 도덕질서를 위해 가장 중요한것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사고와정책)의 훼손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해 비록 여성들이 전례 없는 자율성을 얻긴 했지만, 이러한 일련의조치는 남성에 대한 의존상태라는 자격을 세심하게 규정해놓은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 라는 직업은 20세기에 들어서 새로 나타난 직업이며, 사회의 각종 스트레스를 피해 가정에서 안락하게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현대 여성은 사회진출보다 가정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현대기술의 발달로 가사 노동의 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사무실에서 남자들이 노동에 시달릴 때 여성들은 가사일을 마치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인생을 즐기는 현상에 대해서 여성운동가들이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오히려 사회적 편견이 남성의 전업주부화를 막고 있기에 여성의 사회 진출운동과 더불러 남성의 가정 진출 운동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남성을 괴롭히며 성적인 쾌감을 얻는 펨돔 ( femdom ) 과 페미니즘 ( feminism) 이 혼동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둘은 따로 분리되어 생각되어야 한다. 여성운동가들이 남녀 평등을 넘어서 여성에게만 유리한 제도를 만들려고 한다며 페미니즘을 가진 여성은 펨돔이 대부분이라는 의견이 제시되어 왔으나 정신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의 결과로서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부라는 부서가 있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편집]

한국의 페미니즘은 1920년대부터 등장하였다. 이들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기독교 페미니즘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중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결혼 제도, 정조론을 비판하였는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결혼의 자유, 연애의 자유, 성적 자유를 주장한 반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정이나 순결에서의 해방을 주장하였다.[2] [3]

대한민국 행정부에 여성부 혹은 여성가족부가 포함된 것은, 대한민국에 젠더폭력이 존재하고 대한민국의 성평등 지수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국인 상황 속에서 성 차별 상황을 보정하고 성평등을 지향하고자 하는 취지이다.[4] [5] [6] [7] [8] [9] [10]

자유여성주의[편집]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여성[11]로,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박인덕 등이 있었다. 이들은 자유 연애, 정조 문제 철폐, 섹슈얼리티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들은 모성 보다 여성의 정체성, 섹슈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겼다. 나혜석은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떡 먹고 싶을 때 떡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선언하였다.[11]

모성애에 대해서는 사회와 국가가 강요하는 관습이며 모성애를 갖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였다.

나혜석 등은 영과 육체가 하나가 될 때만이 진정한 사랑이 된다고 주장하였고, 김일엽은 연애, 결혼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신뢰만 저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정조라고 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순결과 정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연애를 주장하였다.

사회여성주의[편집]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는 여성[11]이었다. 허정숙, 주세죽, 정칠성 등이었다. 이들은 "계급이 있는 한 참된 연애는 없다."고 주장하여 반봉건 계급투쟁에 훨씬 더 무게를 실었다. 이들은 여성 그 자체 보다는 민족과 계급을 앞세웠다. 여성이 해방되려면 계급해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1]

모성애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는 않았지만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견해를 수용, 국가와 사회가 어머니 역할을 수행하고, 가사노동을 분담하여 여성을 가정에서 해방시키자는 것이 주 견해였다.

그리고 계급해방이 되려면 민족 해방부터 이룩해야 된다고 보았다. 이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순결과 정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랑, 자유로운 연애를 주장했다. 그러나 남자, 여자가 평등한 관계여야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이 단순히 성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을 내세웠다면 이들은 봉건 제도와 도덕관에 저항하는 뜻에서 자유 연애를 외쳤다. 이들은 자유 연애를 여성 해방으로 간주하였다.

기독교 여성주의[편집]

기독교 계열 여성운동가로는 김활란, 황신덕 등이 있었다.[11] 기독교 계몽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가부장적인 기독교 윤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11] 일부 일처제를 강조하고 순결을 강조한 기독교는 축첩 제도라는 봉건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유교적 가부장제의 정절론, 모성론과는 뜻을 같이 하였다.[11]

급진여성주의[편집]

여타 사회운동과의 관계[편집]

많은 여성주의자들은 정치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여성주의자들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어디든지 정의가 위협받으면 모든 곳에서 정의가 위협받게 된다"는 표현을 몸소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대다수의 여성주의자들이 여성해방 운동 뿐만 아니라, 시민 권리 운동과 게이 권리 운동, 장애인 권리 운동 등을 지지한다.[출처 필요]

이러한 여성주의의 면모는 세계 여성의 날(매년 3월 8일)의 성립 과정에서 잘 볼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이 국제적인 사회혁명의 흐름 가운데서 생겨났던 것처럼, 현재의 여성주의 운동도 세계적인 사회운동과 더불어 그 주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다른 사회 운동 조류와의 혼합[편집]

2004년 11월 국회에 선출된 여성 비율 (백분율)
르완다 49.0
스웨덴 45.3
남아프리카 공화국 42.0
나미비아 42.0
덴마크 38.0
핀란드 37.5
노르웨이 36.4
네덜란드 35.0
독일 32.8
아이슬란드 30.2
뉴질랜드 28.3
오스트리아 27.5
캐나다 21.1
중국 20.2
영국(하원) 17.8
모리셔스 17.0
미국 15.0
일본 7.1

아래의 링크들은 모두 영문 위키백과 링크들이다.

전 세계적 수치[편집]

다음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관련한 통계의 일부이다.

  • 《유엔 인류 발전 2004년 보고서》: 〈28장, 젠더와 노동 부담 그리고 시간 배당〉에 의하면 무임금과 임금직 가사 노동을 감안할 경우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개발도상국의 농촌 지역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약 20%를 더 일하였는데 이는 일당 98분에 해당한다. OECD 가입 국가들의 경우 여성은 5%를 더 일하며 이는 18분에 해당한다.
  • 여성은 세계의 주요 입법 기관에서 소수를 차지한다. 1985년 핀란드 국회의 여성 비율은 32%에 도달해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P. Norris) 현재 스웨덴은 45%로 가장 높은 수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오직 14%만이다. 세계 평균은 겨우 9 퍼센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Welsh Assembly Government 는 전원 여성이다.

읽을 거리[편집]

참고 문헌[편집]

함께 보기[편집]

참조[편집]

  1. 정희진. 확실성에 도전하는 도덕철학의 새 지평. 한겨레신문. 2013년 8월 25일.
  2. 박노자. 신여성의 명암, 히라쓰카 라이초. 한겨레21. 2006년 1월 10일.
  3. 이은경. “이제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요”. 여성신문. 2011년 4월 8일.
  4. 김영근. "여성부 신설은 역사의 흐름이다"...김대통령 강조 . 한국경제. 2000년 2월 21일.
  5. 신설 여성부에 바란다. 연합뉴스. 2000년 12월 26일.
  6. 김혜림. 신설되는 ‘여성部’무슨일 하나 . 국민일보. 2000년 12월 26일.
  7. 안이환. “성평등 국가답게 군 복무 기회도 평등하게”. 여성신문. 2013년 8월 24일.
  8. 이하나. 잘 나가는 북유 럽 국가들 뒤엔 성평등 정책 있다. 여성신문. 2013년 10월 24일.
  9. 김명자. 젠더혁신이 새로운 창의성 기반 생태계 이끈다. 서울신문. 2014년 3월 10일.
  10. 김수정. 폭력 없는 세상 여성이 웃어야 세상이 웃죠! . 내일신문. 2014년 7월 4일.
  11. 최규진, 《근대를 보는 창 20》 (서해문집, 2007) 260페이지

외부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