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그로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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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그로티우스
Hugo Grotius

출생 1583년 4월 10일
네덜란드 공화국 델프트
사망 1645년 8월 28일 (62세)
스웨덴포메라니아 로스토크
직업 법학자, 정치가, 저술가, 철학자, 신학자
종교 서양 철학

휴고 그로티우스(라틴어: Hugo Grotius 후고 그로티우스[*], 1583년 4월 10일 ~ 1645년 8월 28일) 또는 휘호 더 흐로트(네덜란드어: Hugo de Groot), 하위흐 더 흐로트(Huig de Groot)는 "국제법의 아버지", "자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네덜란드법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생애[편집]

델프트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레이던 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613년 로테르담에서 주지사가 되었다. 1619년에는 엄한 칼뱅주의를 반대한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다가, 후에 아내의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스웨덴 국왕을 섬긴 이유로 1635년부터 1645년까지 프랑스 주재 스웨덴 대사를 지냈다.

62세의 나이로 로스토크에서 사망하였다.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가 사망하고 3년 뒤에 "국제법의 출발점"이라는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업적[편집]

중세와 근대의 점접의 시대에 살았던 그는 유럽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들을 몸소 목도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전쟁을 어떻게 하면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다 주었고 그가 전쟁의 국제법에 대한 이론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전쟁의 정당한 원인으로 자기방위, 재산 회복, 처벌의 세 가지 요인을 한정하여 정당한 전쟁의 범위를 설정하였다.

토머스 아퀴나스에 의해 합리화된 자연법을 더욱 진전시켜 자연법을 신(神)이 아니라 인간 이성에 기초를 둠으로써 자연법의 세속화를 전개해 나갔다. 국제 사회에 자연법을 적용하고, 개인의 자연권에 상당하는 국가주권 간의 자연법적 질서를 가지고 국제법의 기초로 하였다. 그의 자연법론도 국제법론도 독창적인 것은 아니며, 수아레즈·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 등 전대의 여러 학설의 집대성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다.

주요 저서[편집]

  • 전쟁과 평화의 법 (De jure belli ac pacis libri tres, 1625)
  • 포획법론 (De Jure Praedae Commentarius, 1604)
  • 자유해양론(Mare Liberum, 1609)
  • 화점론(De Jure Belliac Pacise, 1625)

참고문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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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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