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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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뒤르케임

다비드 에밀 뒤르켐(David Émile Durkheim, IPA: [dyʁˈkɛm], 1858년 4월 15일 ~ 1917년 11월 15일)은 프랑스사회학자이며 사회학인류학이 형성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사회학 연보는 사회학이 학계에서 사회과학의 분과로 확립되는 데 일조했다.뒤르케임은 일생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 범죄, 종교, 자살, 사회주의등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수많은 사회학 연구서를 출간했다.초기 연대주의와 길드사회주의[1]를 제창한 사람이기도 하다.

뒤르케임의 이론[편집]

사회적 사실[편집]

원래 뒤르케임은 종교적/인종적 단일성이 깨진 근대 사회가 어떻게 통합과 응집성을 유지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근대 사회의 사회 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뒤르케임은 사회 현상에 거의 처음으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허버트 스펜서와 마찬가지로 뒤르케임은 사회의 여러 분야들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기능하는지 밝혀서 그 성격과 존재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를 기능주의 사회학의 선구자로 보기도 한다. 뒤르케임은 사회는 각 부분의 합 이상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당대의 페르디난트 퇴니스막스 베버 같은 학자들과 달리 그는 개인의 행위를 결정하는 요소(방법론적 개인주의)보다는 사회적 사실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 용어는 각 개인의 행동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사회적 사실은 각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초월하는 더 크고 객관적인 실체이며, 이것은 가령 특정 기후나 생태 환경에 적응하는 어떤 사회의 적응 양태처럼 다른 사회적 사실들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분업론[편집]

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전문화된 작업 및 서비스에 종사하므 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상호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 인구의 증가

- 유대관계에 깊은 영향을 줌

- 기계적 유대관계로 맺어지는 사회

- 유기적인 인간관계를 맺음

자살[편집]

뒤르케임은 자살을 개별적 행위로만 규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발생,강제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고,그 사회적 유형을 네가지로 나누었다.

  • 이기적 자살: 사회적 통합도가 낮아 개인이 극도로 고립되거나 자신만 구원되기를 바라는 이기심에서 발생하는 자살.
  • 이타적 자살: 개인이 과도하게 사회속에 통합되어 있거나 사회적·민족적 연대감·책임감이 강할 때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는 일본 제국가미카제가 있다.
  • 숙명적 자살: 개인이 과도하게 규제당하는 노예제 사회나 독재체제 하의 극단적 억압과 통제로 발생한다.
  • 아노미적 자살: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위기 등으로 인한 아노미, 즉 사회의 가치 기준과 규범·윤리관·세계관의 혼돈과 전도로 인한 불확실성 시대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교육[편집]

뒤르케임은 또 교육에도 관심을 가졌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그가 직업적으로 교사를 양성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인데, 그는 사회학을 널리 가르칠 수 있게끔 스스로 커리큘럼을 짰다. 그는 프랑스 시민들이 교육을 통해 공동의 세속적인 배경을 습득하게 되는데 이것이 근대 사회에서 아노미를 방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가 성인을 위한 연대를 창출하기 위해 전문적인 집단을 만들 것을 주장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또한 뒤르케임은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에게 필요한 도덕교육의 내용은 변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는 개인의 존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이며 집단적 의식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하였다. 뒤르케임은 처벌로서 체벌을 반대하였으며 현대사회와 같이 이질적인 경향이 증가할 경우에 보편적사회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뒤르케임은 교육이 다음과 같은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 사회적 연대 강화ㅡ 역사: 훌륭한 일을 한 사람에 대해 배움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한 개인만으로는 중요하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충성 서약: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집단의 일원임을 인지시키고, 그리하여 규율을 깨지 않게끔 한다.

  • 사회적 역할ㅡ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에도 비슷한 체계, 규율, "바깥 세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 노동 분업ㅡ 학교는 학생들을 기능 집단으로 분류하며, 이들이 자신의 능력에 가장 잘 맞는 분야에 직업을 가지게끔 권장한다.

범죄[편집]

뒤르케임은 범죄란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범죄가 "모든 사회적 삶의 근본적인 조건에 종속"되어 있으며, 사회적 기능도 가진다고 믿었다. 뒤르케임은 범죄가 "필연적인 변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접 그런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따라서] 범죄는 개혁을 위한 유용한 준비[가 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회적 긴장을 풀어주고 그리하여 사회를 정화하는 기능을 범죄가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도덕적 양심이 가진 권위는 과도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감히 이에 비판할 수 없을 것이며, 불변의 형태로 고착되기 십상이다. 진보를 위해서는 각자 개인의 창의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범죄자의 창의성이라도... 가능하다."라고 했다.(Durkheim,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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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의 유형을 보상법(restitutive law)과 응징법(repressive law)으로 구별하면서[2], 이것이 사회적 연대(solidarity)의 유형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학에서 법 연구는 그 사회가 가진 연대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법에서 권리의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그가 보기에 법(민법이건 형법이건)은 그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를 보장한다는 표현이었다. 뒤르케임은 근대 법이 점차 도덕적 개인주의의 형태를 나타내는 방식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가치 체계야말로 근대의 사회적 연대에 보편적으로 들어맞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개인주의는 인권과 인간 존엄성과 자율성의 기초가 된다. 자의식이나 이기주의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뒤르케임에게 있어 이 둘은 도덕적 태도가 전혀 아니었다. 뒤르케임의 여러 후계자들도 법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김윤태《사회학의 발견》새로운사람들,25쪽
  2. 보상법(restitutive law)과 응징법(repressive law)은 제재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