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필 고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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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쥘 테오필 고티에(프랑스어: Pierre Jules Théophile Gautier, 1811년 8월 30일 ~ 1872년 10월 23일)는 프랑스 시인, 소설가, 비평가이다.
약력[편집]
고티에는 1811년 프랑스 타르브에서 태어났으며,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하다가 낭만주의 문인들의 영향으로 문학을 하게 되었다. 소설과 시를 썼고, 잡지와 신문에 미술, 연극, 무용 비평을 게재했으며, 《르뷔 드 파리》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낭만주의의 승리를 확고하게 한 1830년의 《에르나니》 상연 때에 붉은 웃옷을 입고 고전파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는 장본인이다.
시집에는 고답파의 선구적 작품 《칠보와 나전》(1852년)이 있고 장편소설 《모팽 양》(1835년), 《미라 이야기》(1857년), 《대장 프라카스》(1863년 ~ 1864년) 등이 있다. 《모팽 양》에 붙인 서문은 예술의 사회적 효용을 부정한 것으로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중 · 단편소설도 많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환상적으로 응고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의 비판은 문학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연극, 회화에까지 미치고 있다. 더욱이 고티에의 공헌은 문장어의 어휘를 풍부히 하였고, 또 후배를 양성하여 큰 영향을 남긴 점이 있다.
작품[편집]
- 장편소설 《모팽 양》(1835)
- 장시 〈알베르튀스〉
- 시집 《에나멜과 카메오》
- 소설 〈죽은 연인 아바타르〉
- 문예비평 〈낭만주의의 역사〉
- 발레극 〈지젤〉(공동집필)
평가[편집]
동시대의 공리주의자를 강력히 비판하고 아름다움의 무용성(쓸모없음)을 주장하였다. 예술지상주의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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