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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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레너(독일어: Karl Renner, 1870년 12월 14일 ~ 1950년 12월 31일)는 오스트리아정치인이다. 그는 당시 모라바 운터 타노비츠 (Unter Tanowitz)에서 태어나서 비엔나에서 죽었다. 그는 1918년 공화국 오스트리아에 있어 초대 정부를 인솔했기 때문에 공화국의 아버지로 불리며, 1945년에 오늘날의 두 번째 공화국을 설립하는데 있어 다시 한번 결정적이었으며, 제2공화국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초기 삶[편집]

레너는 영세한 농부의 18번째 아이로 태어났지만, 그의 이해력 때문에 김나지움을 다니도록 허락 받았었다. 그의 선생님들중 한명은 빌헬름 예루살렘이었다. 1890년에서 1896년까지 그는 빈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했다. 1895년에 그는 '자연의 친구들' (Naturfreunde) 기구의 창립 회원 중 한명이었으며 기구의 로고를 만들었다. 정치에 흥미를 느끼게 된 그는 의회에서 사서가 되었다. 이 초기 시절동안 그는 이미 국제 분쟁과 사법 둘다의 분석에 있어 새로운 견해를 열어 놓았었다. 그는 의회 사서로서 그가 갈망하던 자리를 잃어버리지 않게 다양한 필명으로 그의 혁신적인 생각을 자기것이 아닌것처럼 했었다.[1]

정치 경력[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이전[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 후, 1918년에 그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후계자로 간주되길 바라지 않았던 새롭게 설립된 작은 규모의 독일어를 구사하는 공화국 정부의 초대 수반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새로운 국가 전체를 위하여 새국가와 거의 같은 지역에 위치하였으며 나중에 로마 제국에 한 주로서 병합되었던 고대 켈트 왕국 "노리쿰"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명칭인 "북방 공화국" (독일어: "Norische Republik", 영어: "Noric Republic")을 제안했었다. 그의 제안은 "독일-오스트리아"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일부로 한다는 비엔나 제헌의회의 결의를 파기시켰던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서 연합국에 의해 금지된 명칭인 "독일-오스트리아 공화국" (독일어: "Republik Deutsch-Österreich")을 지지하여 가결되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몰락하기 전에도 레너는 오스트리아를 미래 독일 연합의 일부로 하자고 제의하면서, "오스트리아 병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2]

레너는 항상 정치에 관심이 있었으며 1896년에 그는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1907년에서 1918년 11월에 당의 해산까지 라이스라트에서 당을 대표하였다.

참고[편집]

  1. William M. Johnston, Karl Renner: The Austro-Marxist as Conciliator. In: The Austrian Mind: An Intellectual and Social History, 1848-1938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3 ISBN 0-520-04955-1 p. 108
  2. Ernst Panzenböck, Ein Deutscher Traum: die Anschlussidee und Anschlusspolitik bei Karl Renner und Otto Bauer. Materialien zur Arbeiterbewegung, PhD thesis, Vienna: Europaverlag, 1985 p.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