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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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홉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년 4월 5일 - 1679년 12월 4일)는 영국의 철학자이다. 서양 정치철학의 토대를 확립한 책 《리바이어던》(1651)의 저자로 유명하다.

홉스는 자연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보고, 그로부터 자연권 확보를 위하여 사회 계약에 의해서 리바이어던—이것은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국가의 이름이기도 하다.—과 같은 강력한 국가권력이 발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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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8년 잉글랜드 윌트셔 웨스트포트에서 교구 목사(Vicar)의 아들로 태어났다. 홉스가 16세가 되던 해, 술주정뱅이로 전락한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 홉스는 말름스버리 학교(Malmesbury school)에 입학하여 언어에 뛰어난 자질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1603년 옥스퍼드 대학청교도적 학풍을 자랑하는 말달렌 단과대학에 입학한다. 당시 말달렌 단과대학의 교장이자 진취적인 청교도존 윌킨슨는 홉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편집] 홉스의 국가론: 사회계약

홉스는 사회계약론에 대해 명확하고 자세하게 말한 최초의 근대 철학자이다. 그는 서로 다투던 자연상태 속의 인민이 그들 개인이 가지던 개인의 권리를 양도하여 주권을 창조했다고 보았다. 국가에 의해 개인의 권리는 억류되었고, 그의 방어와 좀 더 기능적인 사회를 위해 그의 권리가 돌아왔으므로 사회계약은 실용주의적 자기-이익 추구의 바깥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홉스는 국가의 이름을 리바이어선이라고 불렀으며, 이는 국가가 사회계약에 의해 창조된 인공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리바이어선은 당시 영국 왕당파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다. 이 책은 유럽에서 망명 중이던 찰스 2세에게 헌정되었으나, 거절 당했다. 찰스 2세와 그 주변 참모들은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절대왕권을 옹호한 홉스의 추론 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맺은 계약으로 왕이 권력을 얻는다면, 왕의 권력은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홉스는 왕이 절대 권력을 가져야한다고 결론을 맺었지만, 왕이 권력을 얻게 되는 절차에서 백성이 주체로 등장한다는 점이 불만스러웠던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홉스의 논리 대신에 왕권은 신이 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그들의 논리로 채택하였다. 왕권신수설은 위로부터의 권력형성을 의미하며, 권력 형성 과정에서 백성은 어떠한 관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홉스의 책에서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추론 방식에서 나타난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홉스와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던, 존 로크에 의해 수용되었고, 로크는 홉스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편집] 홉스의 종교관

[편집] 홉스 철학의 영향

몽테스키외는 홉스와 스피노자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의 영향을 받아 법의 연구를 가치판단으로부터 "순수화"시키고 체계적인 경험적 관찰에 기초시키려 시도한 점에서 법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주목되고 있다.[1]

[편집] 읽어보기

[편집] 저서

  •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번역(1629)
  • 수사학의 기예에 관한 소고(A Brief of The Art of Rhetorick)(1637)
  • 법의 요소들(Elements of Law)(1640: 1650년 해적판으로 출간)
인간 본성, 또는 정치의 근본 요소들(Human Nature, or the Fundamental Elements of Policie)
정치체에 대하여(De Corpore Politico)

[편집] 주석

  1. 양건 [1986년 5월 30일] (2000년 2월 28일). 《법사회학》, 제2판, 서울: 도서출판 아르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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