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멘델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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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멘델스존의 초상화. 영국의 세밀화가 제임스 워렌 차일드(1778–1862)가 1839년에 그렸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독일어: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 2월 3일 ~ 1847년 11월 4일)는 독일의 초기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지휘자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펠릭스 멘델스존이라고 통칭한다.[1]

생애[편집]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했던 명망 있는 유대인 가문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충분히 교육받아 뛰어난 재능을 나타냈으나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부모는 신중하여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재능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자신이 음악에 헌신하겠다고 진지하게 뜻을 세운 뒤에야 음악을 교육받게 했다.[2]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은 3세 때 베를린으로 이주, 17세 때 <한여름 밤의 꿈>의 서곡을 발표하여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어린 시절에 독일에서 성공하면서 유럽 전역을 여행하였는데 잉글랜드에서 작곡자, 지휘자, 독주자로서 특히 크게 인정받아 십 회나 방문한 이곳에서 자신의 여러 수작을 초연하여 잉글랜드는 성인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인생역정에서 중요부를 차지하였으나 원래 보수 경향이 있는 음악 취향을 보여서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엑토르 베를리오즈 같은 당대 대담한 음악가와 동떨어졌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라이프치히에 세운 음악학교는 전통 고전음악의 보루가 되었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교향곡, 협주곡, 오라토리오, 피아노곡, 실내악곡을 썼다. 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음악 취향이 변화하고 반유대주의가 대두하면서 오랜 세월 무시되다가 오늘날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독창성이 재평가된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은 이제 낭만주의 음악 음악가 가운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1843년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창립하고 이어 프로이센 국립 음악장, 라이프치히 대학 명예박사가 되었다.

1847년 봄, 몹시 따르고 좋아했던 누이가 숨지자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과대히 충격받아 몸져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그해 가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38세.

사후[편집]

원래 유대인 혈통이었으나 아버지 아브라함이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이름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에 바르톨디(bartholdy)를 붙여 다른 멘델스존 ()와는 구별되게 하였으나 혈통이 유대인이었던 탓에 독일에서 나치 시대에 라이프치히에 있던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동상이 철거되고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작곡한 <결혼 행진곡> 연주까지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3]

작품[편집]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일생은 실로 작곡과 연주의 연속이었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슈베르트와 같은 생활고 없이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던 비상한 재능이 작품에 반영돼 명쾌하고도 아름다운 음악이 완성되었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색채스러우면서 우아한, 현재 실재하거나 실현될 수 없고 현실에 부합한 기초나 가능성이 없으며 무망한 실현 가능성을 막연히 그리어 보는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브람스의 곡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손꼽힌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유명한 작품은 바흐의 고전음악 연구에서 배워 얻은 바가 많고 바흐를 세상에 소개한 공적은 실로 크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낭만파의 선구자로서, 신고전파의 길 지도자로서, 음악사상 (史上) 중요한 위치다.[4]

초기 작품[편집]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은 어린 시절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에게 크게 영향받아 12살에 작곡한 초기 현악 교향곡을 보면 이 사람들을 따라간 흔적이 보이는데 이런 작품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가정에서 연주하였고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몰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출판되어 사람들이 연주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1821년에서 1823년 사이, 즉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12살에서 14살이던 시절에 쓴 것이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경이로운 재능은 특히 성년기 초의 작품에서 잘 나타나는데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목적한 소나타 E♭장조(1824년), 현악 8중주(1825년), "한여름 밤의 꿈" 서곡(1826년, 이 곡 종결부는 당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교우 (膠友)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에게 크게 영향받은 것이다), 현악 4중주 A단조(1827년, 2번으로 표시되나 1번곡이 나오기 전에 먼저 작곡된 곡이다)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런 작품은 형식, 화성, 대위법, 음색, 베토벤의 작곡 기법을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직관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현로하므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재능이 유식한 이해 면에서 모차르트를 능가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5]

교향곡[편집]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이 성년이 되어 작곡한 교향곡의 번호는 작곡된 순서가 아니라 대개 출판된 순서를 좇는다. 작곡된 순서로는 1번, 5번, 4번, 2번, 3번순(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10년이 넘도록 교향곡 작곡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작곡 순서에서 교향곡 3번의 위치가 문제시되는데 교향곡 5번 이후에 3번 초고를 시작했으나 5번과 4번 다음으로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전체 관현악단 편성의 교향곡 1번 C단조는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15살이던 1824년에 작곡하였다. 이 곡은 새로운 방법·형식을 시험 삼아 해 본 작품으로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에 받은 영향이 나타난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은 1829년 런던을 처음으로 방문하여 로열 필하모닉 협회와 함께 이 교향곡을 지휘하였다. 3악장은 자신의 8중주곡을 스케르초인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이 작품은 대성공하여 영국에서 명성을 얻게 쌓게 되었다.

1829년에서 1830년 사이에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은 제목 '종교개혁'으로 알려진 교향곡 5번을 썼다. 이 곡은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려는 곡이었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이 작품에 불만족해 악보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향곡 3번 a단조 "스코틀랜드" 는 1830년에서 1842년 사이에 작곡되어 간간히 수정하였다. 이 작품은 낭만주의의 감성으로 스코틀랜드의 분위기를 담아냈지만, 스코틀랜드의 민요를 차용하지는 않았다. 1842년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이 작품을 피아노 2중주곡으로 편곡하여 출판하였고 관현악 악보는 1843년에 나왔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감명받아 교향곡 4번 A장조 "이탈리아"를 작곡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1833년 이 곡을 초연하였으나 계속 수정하려고 하여 생전에 출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1840년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교향곡 2번 B♭장조 "찬가"(Lobgesang)를 작곡하였고 이 악보는 1841년에 출간하였다.

기타 관현악 작품[편집]

1820년대 후반경 스코틀랜드를 방문하여 느낀 인상으로 1830년 연주회용 서곡 헤브리디스 서곡(핑갈의 동굴)을 작곡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유럽을 순회하던 중 헤브리디스 제도스태파 섬에서 핑갈의 동굴에 가서 깊은 감명받았고 서곡의 도입부 주제를 재빠르게 썼으며 그날 저녁 이것을 집에 편지로 보내었다.

그밖에도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여러 연주회용 서곡을 썼다. 오늘날 널리 연주하는 곡으로는 뤼 블라스 서곡(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본인이 싫어하던 빅토르 위고의 연극의 자선 공연회용 곡이었다),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Meerestille und Glückliche Fahrt, 괴테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아름다운 멜루지네 서곡이 있다.

부수 음악(incidental music) 한여름 밤의 꿈(Op.61)은 서곡이 나온지 17년 만인 1843년에 작곡한 것으로,결혼 행진곡1843년작곡했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1844년)은 페르디난트 다비트를 목적해 쓴 곡으로서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인기 있는 음악 가운데 손꼽히는 곡이다. 이 작품을 준비할 때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와 일하던 페르디난트 다비트는 자신의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이 곡을 초연하였다.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을 쓴 바 있고 바이올린 협주곡(D단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목적한 협주곡 두 곡,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목적한 2중 협주곡도 작곡하였으며, 한 악장짜리로 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를 목적한 작품도 더러 있다. 이런 곡 가운데 피아노 편성이 있는 곡으로 "화려한 론도"(Rondo Brillante, Op.29, 1834년), "화려한 카프리치오"(Capriccio Brillante, Op.22, 1832년) "세레나데와 알레그로 조코소"(Serenade and Allegro Giocoso, Op. 43, 1838년)이 있으며, Op.113과 Op.114는 콘체르트슈튀케(Konzertstücke)로 원래 클라리넷, 바세트 호른, 피아노를 목적한 곡이었으나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생전에 관현악용으로 편곡되어 연주된 바 있다.

실내악[편집]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성인이 되어 남긴 여러 실내악곡 중 여러 곡은 어떤 사람이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큰 작품에서 결여한다고 간주되는 강렬한 감정을 나타낸다. 특히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의 마지막 현악 4중주곡인 현악 4중주 6번은 누이 파니 (Fanny) 사후에 쓴 것으로, 강렬하면서도 감동스럽다. 다른 작품으로는 현악 5중주 두 곡과 클라리넷,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을 위한 여러 소나타 작품, 피아노 3중주 두 곡, 피아노 4중주 세 곡 등이 있다. 피아노 3중주 1번 D단조는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전과 달리 동료 음악가(페르디난트 힐러)에게 조언받아 현재 실재하거나 실현될 수 없고 현실에 부합한 기초나 가능성이 없으며 무망한 실현 가능성을 막연히 더욱 그리어 보는 "슈만풍"으로 피아노 부분을 수정하여 곡의 효과를 높였다.

성악[편집]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피아노가 반주하는 독창이나 이중창 등 여러 성악곡도 작곡하였다. 노래의 날개 위에와 같은 곡이 있다.

각주[편집]

  1. 영문 인쇄물에서는 거의 대부분 '멘델스존 바르톨디'가 아닌 '멘델스존'이라고만 쓰고 있다.(가령 참고문헌이나 아마존닷컴에서도 그렇다) 그로브 음악 및 음악가 사전에도 표제어를 '(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라고 괄호를 써서 나타내고 본문에서도 그저 '멘델스존'으로 쓰나 다른 언어에서는 대개 '멘델스존 바르톨디'(혹은 하이픈을 붙여서)으로 쓰인다.
  2. Brown (2003), 115
  3. 신동헌. 《재미있는 음악사 이야기》. 서울미디어. 236쪽. 
  4.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5. See e.g. Todd (2003), 79–108, esp. pp. 102–107

참고 문헌[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