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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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쇼펜하우어
Schopenhauer.jpg
출생 1788년 02월 22일(1788-02-22)
단치히
사망 1860년 9월 21일 (72세)
독일 연방 프랑크푸르트암마인
시대 19세기 철학
지역 서양 철학
연구 분야 형이상학, 미학, 윤리학, 현상학, 도덕, 심리학
서명 Arthur Schopenhauer Signature.svg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독일어: Arthur Schopenhauer, IPA[ˈaʁtʊʁ ˈʃɔpənˌhaʊ̯ɐ], 1788년 2월 22일 ~ 1860년 9월 21일)는 독일철학자로 대표작에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가 있다. 동양 철학에 영향을 받았고, ‘진리는 인도의 현자로 부터 인식된다’고 주장하였고[5] 그 결과, 그가 제안한 고통의 해결 방법은 금욕주의와 같은 베단타 학파불교의 의견과 비슷했다. ‘선험적 관념론’에 대한 믿음[6]무신론으로 이어졌다.[7][8][9][10]

1813년, 현상 세계의 네 가지 측면[11]에 대해 다룬 대학 논문인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Ü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를 출판하였고, 그 이후부터 현상론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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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8년 2월.22일 단치히에서 상인의 아들로 출생.
  • 1793년(5세) 단치히프로이센에 합병되자 가족이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 1797년(9세) 여동생 아델레가 출생했다. 프랑스 르아브르에 있는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2년 간 지냈다. 이 시기에 프랑스어를 익혔다.
  • 1799년(11세) 프랑스에서 돌아와서 상인 양성기관인 룽게 박사의 사립학교에 입학했고 이곳에서 4년 간 공부했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사업가가 되기를 희망했다.
  • 1800년(12세) 아버지와 하노버, 카를스바트, 프라하, 드레스덴을 여행했다.
  • 1803년(15세) 아버지의 권유로 가족과 유럽 여행을 했다. 이 시기에 영어를 익혔다.
  • 1804년(16세) 단치히에서 상인 실습을 시작. 그러나 무관심했다.
  • 1805년(17세) 아버지가 창고 통풍창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자살한 걸로 추정됨.
  • 1806년(18세) 아버지 사망 후, 가족이 바이마르로 이주했다. 본인은 함부르크에 남아서 상인 실습을 지속했다.
  • 1807년(19세) 어머니의 권유로 상인 실습을 중단함. 고타에 있는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라틴어 등 고전어를 열심히 학습함.
  • 1809년(21세) 괴팅겐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함. 그러나 철학에 더 흥미를 두었다. 대학에서 화학, 물리학, 언어학, 역사, 등 여러 강의를 듣고 공부함.
  • 1810년(22세) 철학자인 고틀로프 에른스트 슐체(Gottlob Ernst Schulze)의 강의를 들었다. 슐체에게 플라톤, 칸트를 깊이 연구해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G.E 슐체의 진지한 조언은 쇼펜하우어에게 큰 영향을 끼침.
  • 1811년(23세) 어머니(요한나 쇼펜하우어)가 독일 근대문학의 거장이자 선구자인 크리스토프 빌란트에게 쇼펜하우어가 철학 전공을 못하도록 설득해줄 것을 부탁함. 78세인 빌란트는 23세의 쇼펜하우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진로에 대해서 조언을 함. 결국 쇼펜하우어는 제대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함. 가을에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했다. 베를린대학에서는 동물학, 지리학, 천문학, 생리학, 시학, 어류학, 식물학, 조류학 등 여러 강의를 들음. 피히테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셸링, 피히테를 탐구함. 그러나 회의적이었음. 그리스 로마 고전 강의를 열심히 들음.
  • 1812년(24세) 플라톤, 임마누엘 칸트 등 여러 사상가를 깊이 탐구함. 베이컨, 존 로크 등의 사상가를 깊이 탐구함. 슐라이어마허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 1813년(25세)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연합군과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사이에 전쟁이 재발했다. 쇼펜하우어베를린를 떠나서 루돌슈타트에서 학위 논문인 <충족 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완성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 사상의 토대가 되는 책이다. 이 논문을 예나튀링겐 주립대학교에 제출하여 철학박사학위를 얻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에게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증정했다. 괴테는 이 논문을 보고나서부터 쇼펜하우어를 제대로 지지하였다. 수개월 동안 괴테와 교제하며 색채론에 관해서 토론했다. 바이마르의 공공도서관에서 아시아 관련 잡지를 읽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 1814년(26세) 바이마르의 공공도서관에서 '우파니샤드'의 라틴어 번역본 우프네카트를 읽고 탐구했다.
  • 1816년(28세) 색채론에 관해서 괴테와 교류한 결실인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가 발표되었다.
  • 1818년(30세) 자신의 철학 주저이자 역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완성했다. 이탈리아로 여행했다.
  • 1819년(31세) 베를린대학교에 강사직을 지원. 헤겔의 강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강의할 것을 희망했다.
  • 1820년(32세) 시범 강의에서 통과함. 헤겔과 강의 중에 약간 논쟁했다. 강의 계획은 1820~1822, 1826~1831년까지 수립돼 있었지만 한 학기만에 끝남.
  • 1822년(34세) 이탈리아로 여행했다.
  • 1823년(35세) 독일로 돌아옴. 여러 질병과 청각장애를 겪음. 뮌헨에서 겨울을 보냈다.
  • 1824년(36세) 가슈타인(스위스), 만하임, 드레스덴에서 체류함. 데이비드 흄의 '종교의 자연사'와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에 대한 번역 계약 체결을 시도했다.
  • 1825년(37세)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번역가로서 스페인어책을 번역하기도 함.
  • 1831년(43세) 콜레라가 베를린에 퍼지자, 베를린을 떠나서 프랑크푸르트로 이주했다.
  • 1833년(45세) 프랑크푸르트에 제대로 정착함. 프랑크푸르트 주민들의 희한한 구경거리가 됨. 쇼펜하우어의 저서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
  • 1836년(48세)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를 출판. 매우 꾸준히 학문에 매진했다.
  • 1837년(49세) '칸트 전집' 출판에 관여함. 노르웨이 왕립 학술원의 현상논문 모집에 응모하기로 결정함.
  • 1838년(50세) 모친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사망함. 덴마크 왕립 학술원의 현상논문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하기로 결정함.
  • 1839년(51세) 현상논문 '인간의지의 자유에 관하여'를 가지고 노르웨이 왕립 학술원으로부터 수상함.
  • 1840년(52세) 현상논문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를 가지고 덴마크 왕립 학술원에 단독으로 지원했지만, 학술원의 부당한 판정으로 수상하지 못함.
  • 1841년(53세) 두 현상논문을 묶어서 '윤리학의 두 가지 근본문제'를 출판함.
  • 1842년(54세) 여동생 아델레를 20년만에 만남.
  • 1844년(56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이 완성됨. 제1권의 재판과 함께 출판함.
  • 1845년(57세)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를 쓰기 시작함.
  • 1846년(58세) 율리우스 프라우엔슈타트쇼펜하우어를 만났고 쇼펜하우어와 교제하기 시작함. 이 사람은 쇼펜하우어의 열혈 추종자다. 쇼펜하우어는 판사 요하네스 베카라는 사람이 자신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나 그것을 글로 쓰지 않았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냄.
  • 1847년(59세)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 개정판을 출간.
  • 1849년(61세) 여동생을 마지막으로 만남. 여동생 아델레가 사망함.
  • 1851년(63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를 출간함.
  • 1853년(65세) 영국의 독일어책 번역가인 존 옥센포드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영국의 '웨스터 민스터 리뷰'에 소개함.
  • 1854년(66세)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개정판을 출간. 리하르트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에게 '니벨룽겐의 반지'의 헌정본을 보냈다. 쇼펜하우어가 바그너를 알게 됨.
  • 1855년(67세) 라이프치히 대학의 철학과가 '쇼펜하우어 철학 원리에 대한 해명과 비판'이라는 현상 과제를 제시함. 여러 대학에서 쇼펜하우어의 사상 관련 강의가 개설되기 시작함.
  • 1857년(69세) 쇼펜하우어에 대한 강의가 본대학교브레슬라우대학교에 개설됨.
  • 1859년(71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판이 출간됨.
  • 1860년(72세) 9월 21일 금요일 아침, 프랑크푸르트 자택에서 사망했다.

쇼펜하우어의 영향[편집]

쇼펜하우어는 철학분야 보다도 그 외의 과학분야, 예술분야에 더욱 큰 영향을 끼쳤다.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답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은 1859년에 나왔는데,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에게 무관심했으므로 바그너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기초에 해당하는 억압에 대해서 자신보다 먼저 쇼펜하우어가 잘 설명했다는 것을 인정했다.[12]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융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헤겔의 거만한 문체보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탐구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헤겔은 난해하고 거만한 문체로 나를 겁먹게 해서 나는 노골적인 불신감으로 헤겔을 대했다 헤겔은 마치 자신의 언어구조 속에 갇혀 그 감옥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몸짓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카를 융 자서전

[13]


아마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분야는 문학계일 것이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 졸라 그리고 독일 작가 토마스 만, 영미권 작가인 토마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창작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했다.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와 토마스 하디의 테스 등의 소설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단편 작가로 유명한 프랑스의 모파상,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영국의 윌리엄 서머싯 몸,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등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문학가들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영향은 20세기에도 지속되었다. 쇼펜하우어의 이름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에 많이 나타났는데, 체호프 이후에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은 조지 버나드 쇼, 루이지 피란델로, 사무엘 베케트 등의 희곡 작품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예술 분야에서 이 정도로 이야기될 수 있는 철학자는 별로 없다. 예술,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칼 마르크스조차도 쇼펜하우어에 견줄 수는 없다. 당연히 쇼펜하우어는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이 철학자가 된 계기는 쇼펜하우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20세기 전반부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출발시켰다.[14]


쇼펜하우어가 살았던 시대에 속하는 19세기 전반에 쇼펜하우어는 무시 당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는 가장 유명하고도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되었다. 20세기 전반에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난해하다고 무시되기도 했고, 일부 철학 교사들조차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탐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쇼펜하우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20세기 모든 철학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인 비트겐슈타인에게 명백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15][16]


영국 철학자 칼 포퍼는 자신의 아버지 서재에 쇼펜하우어찰스 다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회고했다.[17] 칼 포퍼는 에르빈 슈뢰딩거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슈뢰딩거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수용했다고 말한다. 또한 칼 포퍼는 자신의 책 이름을 짓는 일에 쇼펜하우어가 지은 이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칼 포퍼는 자신의 아버지 서재에는 웬만한 철학서적은 대부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러 책을 읽다가 칸트순수이성비판을 만났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쇼펜하우어의 여러 저서들을 읽었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은 자신이 태어나서 최초로 진지하게 읽고 공부한 두꺼운 철학서적이라고 말했다.[18]

주요 저서[편집]

  •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Ü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 1813년. - 철학 박사 논문.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I (1819년), II. - 쇼펜하우어의 철학 주저.
  • 《윤리학의 두 가지의 근본 문제》(Die beiden Grundproblemeder Ethik), 1841년. - '인간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 이 두 논문을 묶어 출판된 것임.
  •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 1851년. - '인생론' 등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이고, '소품과 부록'이라고 불리기도 함.
  • 《시각과 색채에 관하여》 (Über das Sehen und die Farben), 1814년.
  •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Ueber den Willen in der Natur), 1836년.
  • 토론의 법칙》(Der handschriftliche Nachlass 라는 유고 중 일부) - 궤변론자 사기꾼들에 대항하기 위한 논쟁 방법을 적어두었다. "실제 토론에서 상대의 터무니없는 주장 방식을 간파하고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 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국내에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토론의 법칙' 등의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다.

주석[편집]

  1.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22쪽~40쪽
  2. Mein Glaubensbekenntnis (1932년 8월): "I do not believe in free will. Schopenhauer's words: 'Man can do what he wants, but he cannot will what he wants,[Der Mensch kann wohl tun, was er will, aber er kann nicht wollen, was er will]' accompany me in all situations throughout my life and reconcile me with the actions of others, even if they are rather painful to me. This awareness of the lack of free will keeps me from taking myself and my fellow men too seriously as acting and deciding individuals, and from losing my temper." Schopenhauer's clearer, actual words were: "You can do what you will, but in any given moment of your life you can will only one definite thing and absolutely nothing other than that one thing." [Du kannst tun was du willst: aber du kannst in jedem gegebenen Augenblick deines Lebens nur ein Bestimmtes wollen und schlechterdings nichts anderes als dieses eine.] On the Freedom of the Will, Ch. II.
  3. (영어) John Gray: Forget everything you know — Profiles, People. The Independent (2002년 9월 3일). 2010년 4월 9일에 보존된 문서. 2010년 3월 12일에 확인.
  4. Cate, Curtis. Friedrich Nietzsche. Chapter 7.
  5.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 1, trans. E. Payne, (뉴욕: Dover Publishing Inc., 1969), 3.
  6.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 1, trans. E. Payne, (New York: Dover Publishing Inc., 1969), 4.
  7. (2009) David A. Leeming, Kathryn Madden, Stanton Marlan: 《Encyclopedia of Psychology and Religion, Volume 2》. Springer, 824쪽. ISBN 978-0-387-71801-9. 2010년 9월 2일에 확인. “A more accurate statement might be that for a German – rather than a French or British writer of that time – Schopenhauer was an honest and open atheist.”
  8. Raymond B. Marcin (2006). 《In Search of Schopenhauer's Cat: Arthur Schopenhauer's Quantum-Mystical Theory of Justice》. CUA Press, 122쪽. ISBN 978-0-8132-1430-6. 2012년 9월 2일에 확인. “It is easy to find many of the underpinnings of Schopenhauer's doctrine of the denial of the will to live in the Theologia Germanica, but only if one is willing to gainsay the anonymous author's theism and Schopenhauer's atheism.”
  9. (2007) Dale Jacquette: 《Schopenhauer, Philosophy and the Art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2쪽. ISBN 978-0-521-04406-6. 2012년 9월 2일에 확인. “For Kant, the mathematical sublime, as seen for example in the starry heavens, suggests to imagination the infinite, which in turn leads by subtle turns of contemplation to the concept of God. Schopenhauer's atheism will have none of this, and he rightly observes that despite adopting Kant's distinction between the dynamical and mathematical sublime, his theory of the sublime, making reference to the struggles and sufferings of struggles and sufferings of Will, is unlike Kant's.”
  10. B. R. Hergenhahn (2009). 《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Psychology》, 6th, Cengage Learning, 216쪽. ISBN 978-0-495-50621-8. 2012년 9월 2일에 확인. “Although Schopenhauer was an atheist, he realized that his philosophy of denial had been part of several great religions; for example, Christianity, Hinduism, and Buddhism.”
  11.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Vol. 1, trans. E. Payne, (New York: Dover Publishing Inc., 1969), table of contents.
  12. 브라이언 매기, 철학의 역사, p.145.
  13. 카를 구스타프 융, 기억 꿈 사상(자서전), p.133.
  14. 브라이언 매기, 철학의 역사, p.145.
  15. 쇼펜하우어,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 284쪽, 브라이언 매기의 말
  16. The Philosophy of Schopenhaur,Oxford, 1983
  17. 칼 포퍼, 끝없는 탐구, 20쪽.
  18. 칼 포퍼,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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