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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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학파 (Epicureanism) 를 창시한 것은 신(神)과 같이 추앙을 받던 에피쿠로스이다. 다수의 제자가 쾌락주의를 계승하여 그리스어논문을 쓴 필로데모스, 메트로도로스가 유명하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설을 라틴어로 남김없이 철학시(哲學詩)로 정리해 낸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더욱 유명하다.
메트로도로스는 람프사코스의 사람으로 열렬한 에피쿠로스 동조자였다. 그를 안 후 그의 곁을 떠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다. 스승보다 7년 앞서 53세로 타계하였다. 그는 에피쿠로스의 모사(模寫)라고까지 불리었던 선량한 사람으로, 곤란에 부딪혀 또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학파의 사람들은 철학을 행복 추구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행복이란 일종의 정신적 쾌락으로, 그것을 구하며 그것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때그때의 일시 쾌락으로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 어떤 때에도 마음이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를 쾌(快)로 보았다. 공(公)의 생활을 단념하라, 숨어서 조용히 살라고 권하고 있다. 국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지킬 필요에서 계약을 맺은 단체에 불과하다.
이 사상은 사회 계약설 (국가 계약설)[1]의 선구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주석[편집]

  1. 스페인 르네상스의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Francisco Suárez, 1548 ~ 1617), 근세의 휘호 흐로티위스 (Hugo Grotius, 1583 ~ 1645),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 ~ 1679년), 존 로크 (John Locke, 1632 ~ 1704) 및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참고 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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