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헤르만 헤세 (1925년)노벨상을 수상한 인물 또는 단체입니다.
Hesse Signature.svg

헤르만 헤세(독일어: Hermann Hesse, 1877년 7월 2일 - 1962년 8월 9일)는 독일계 스위스인. 시인, 소설가, 화가이다.

생애[편집]

성장[편집]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시인의 고장 슈바벤 주의 뷔르템베르크 소재 소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선교사이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와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1842-1902년)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 남편을 잃고 아버지의 제자로 있던 요하네스 헤세와 32세 때에 재혼하였는데, 그녀가 5살 연상이었다. 요하네스 헤세는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인디아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는 선교사였고, 외삼촌 빌헬름 군데르트는 일본에서 활동한 교육가로 불교연구의 권위자였다. 이러한 환경은 헤세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했다. 어머니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이 있었고 헤세의 형제로는 누이 아델레(1875-1949),동생 파울 (1878년 출생 해에 사망), 게르트루트(1879-1880, 같은 이름의 작품이 있다.), 마리(1880-1953) 그리고 한스(1882-1935, 작품 인물 중에 가끔 등장하는 이름이다.)가 있다. [1] 1881년-1886년 양친과 함께 바젤로 이사하여 거주했다. 1883년 아버지가 스위스 국적을 얻었으며, 1886년 (9세) 다시 칼프로 돌아갔다.

교육[편집]

1889년까지 실업학교에 다녔으며, 1890년 신학교 시험 준비를 위해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뷔르템베르크 국가시험에 합격, 신학자를 위한 첫 관문 통과했다. 이를 위해 아버지는 뷔르템베르크 국적을 얻었다. 1891년 14세 때인 1891년 명문 개신교 신학교이자 수도원인 마울브론 기숙신학교에 입학했다. 1892년 신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부적응과 신경쇠약증 발병,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는 것이 중퇴이유였다. 6월에 짝사랑으로 인한 자살 기도. 정신요양원 생활. 11월에 칸슈타트 김나지움 입학. 신학교 때의 경험은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에서 비판적으로 묘사되었다. 1893년 10월 학업중단.

방황[편집]

서점원을 이틀만에 그만 두고, 1894년-1895년 시계부품공장 견습공으로 일했다. 2년간 방황하던 헤르만 헤세는 튀빙겐에서 서점 점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았다.

글쓰기[편집]

1899년 처녀시집 낭만의 노래, 산문집 한 밤중의 한시간 발간. 가을에 바젤의 서점으로 옮겼다. 1901년 최초로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1902년 어머니가 사망했다.

1904년페터 카멘친트(향수)』를 통해 헤세는 일약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작가가 되며, 이후 그는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할 즈음에 『페터 카멘찐트』는 6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다.

휴머니스트[편집]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주의적 태도로 극우파들의 애국주의에 반대했다가 독일에서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돌출된 행동은 당시 지식인들이 전쟁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을 지지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미움을 부추기기까지 하는 극우성을 보이는 것에 대해 실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를 보면서 환멸을 느꼈지만, 아시아 여행경험(1911년)으로 느낀 사해동포주의도 그의 애국주의 반대집필의 배경이 되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데미안』이다. 이 소설은 그가 크게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이다.

노벨문학상[편집]

1923년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제2차 세계 대전 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인쇄에 필요한 종이가 배당되지 않게 한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1946년유리알 유희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헤세의 문학적 특성[편집]

이 문단에는 기여자 고유의 독자적인 연구 또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참고 자료나 출처를 제시해 주세요. 내용에 대한 의견은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헤세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전기 중의 하나는 1927년 위고 발(Hugo Ball)이 써낸 전기인데, 그는 헤세를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騎士)라고 표현했다. [2] 그는 또 끝없이 낭만을 추구한 작가로 기억할 만하다.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청춘을 그리워했으며 이성을 향한 동경이나 호기심, 그 시절의 감미로운 심리묘사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헤세의 작품이 갖는 자전적 경향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18년 동안에 나온 산문들에서 숨김없이 나타난다. [3] 헤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작중 인물로 본인이나 자기 인생에서 인상 깊게 경험한 인물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헤세의 글에서는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원초적 인간본능이라 할 수 있는 청춘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향한 동경, 자유를 꿈꾸는 인간적 해방의 가치가 녹아있기에 현대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현대문명이 자연과 유리되면서 대중은 외톨이로 전락했으며 인간소외는 강화되었고 우울증은 깊어지고 있다. 섬세한 심리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시, 음악, 그림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에 화합하는 삶의 길을 모색해왔는데, 이러한 그의 경험과 심리과정은 오늘날 정신적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또 그가 추구한 것은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통일과 조화를 꿈꾼 것이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신성과 마성 등 자연과 인간내면 세계의 양면성을 관찰하고 이들의 조화를 꿈꾸었다. 이질적인 대립을 통해 양자가 맞서는 긴장을 아름다운 형태로 지향함으로써 보다 높은 통일을 추구한 것이다. 데미안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통일하기 위한 싸움이고, 로스할데는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끝없는 대립상태로 이어지면서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이 그려졌고, 크놀프는 인간의 사회적 정주본능과 인간 원초적인 방랑본능의 대립을 통해 인간적 삶의 길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4]

지와 사랑(나르치스와 골트문트)에서도 신학교라는 지성적 세계에 속했던 골드문트가 항상 지성적 인물 나르치스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유와 감성의 세계를 탐구하고픈 열망으로 끝없이 방랑하였고 그런 감성의 힘을 미술과 조각을 통해 예술적 세계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그의 많은 작품에서는 안정된 기성의 세계에서 부자유와 억압을 느끼고 끝없이 인간해방을 탐구하는 원초적 인간감성을 향한 그리움과 인간성 복원을 추구했다. [5]

대표 작품[편집]

연보[편집]

한국어 번역서[편집]

주석[편집]

  1. 유리알유희, 범우사, 1999년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