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구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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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요하네스 겐스플레이슈 추르 라덴 춤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년경 ~ 1468년 2월 3일)는 약 1440년 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사용한 독일의 금(金) 세공업자이다. 본명은 요한 겐스플레이슈이고, 구텐베르크는 통칭이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활자 설계, 활자 대량 생산 기술을 유럽에 전파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업적은 이런 기술과 유성 잉크, 목판 인쇄기 사용을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활자 제작 재료로 합금을 사용하고, 활자 제작 방식으로 주조를 채용하였다.

생애[편집]

영국 엑슬리에서 만든 구텐베르크 전기에 의하면, 구텐베르크는 1397년 아니면 1398년에 마인츠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집안은 하급 귀족으로 마인츠를 지배하는 대주교 밑에서 돈을 찍어내는 금속 세공 관리로 일했기 때문에, 구텐베르크는 주물, 압축 등의 금속 세공 기술과 지식을 익혔다. 당시 유럽에서는 교회와 세속 권력 간의 해게모니 다툼이 있었는데, 다툼에서 지면 추방되었다. 프리드리히 3세의 마인츠 입성 후, 구텐베르크의 부친도 시민들에 의해 추방되어 슈트라스부르크에 망명하였다.(1411년) 1428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슈트라스부르크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전기 작가들은 그의 직업을 상인, 장인 등으로 추정한다. 다시 금속 활자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1444년경 귀향하였다. 1450년 인쇄소를 설치하고, 고딕 활자를 사용하여 최초로 36행의 라틴어 성서, 즉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하였다. 1453년경 다시 보다 작고 발전된 활자로 개량한 후, 2회에 걸쳐 42행의 구약 성서를 인쇄하였는데, 이 책에서 나타난 우수한 인쇄 품질로 그는 호평을 받았으며 이것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1]

활판 인쇄술이 서양사에 끼친 영향[편집]

구텐베르크 불가타 성서, 제 1권, 구약성서, 성 제롬의 편지

구텐베르크는 활판 인쇄술로 불가타 성서(구텐베르크 성서)를 대량 인쇄하여, 성직자와 지식인들만 읽을 수 있었던 성서를 대중화시켰다. 당시 성서를 비롯한 들은 필사본이라 수량이 적어서 가격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활판 인쇄술이 서양에 등장하면서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쉽게 책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대량 생산된 책 중에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작품도 있었고 이것은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외에 활판 인쇄술은 대중 매체의 한 종류로서의 신문이 탄생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

마르틴 루터로마 가톨릭대사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의 문에 붙였다. 이 글은 활판 인쇄술에 의해 대량으로 인쇄되어 두 주 만에 독일 전역에, 두 달 만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대사를 비판하는 논리를 널리 퍼트려 종교 개혁의 불씨를 지폈다고 할 수 있다.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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