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에르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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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에르하르트
Ludwig Wilhelm Erhard
Bundesarchiv B 145 Bild-F015320-0010, Ludwig Erhard.jpg
독일 독일제2대 총리
임기 1963년 10월 16일~1966년 12월 1일
대통령 하인리히 뤼브케

출생일 1897년 2월 4일
출생지 독일 퓌르트
사망일 1977년 5월 5일 (80세)
사망지 독일
정당 독일 기독민주연합
종교 독일 개신교회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Ludwig Wilhelm Erhard, 1897년 2월 4일 ~ 1977년 5월 5일)는 독일의 정치인, 경제학자이다. 콘라트 아데나워 내각 아래에서 경제장관을 지내면서 독일의 부흥을 이루었고, 2대 총리(1963~66)를 역임했지만 아데나워와의 당내 권력싸움에서 밀려 총리로서는 단명했다.

생애와 경력[편집]

바이에른 주 퓌르트에서 출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경제학을 전공한 후 경제연구소에 들어갔다. 나치스 협회에 의하여 오점이 없던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연합국 점령 당국에 의하여 뉘른베르크-퓌르트 지역의 산업 재건과 함께 신임을 받았다.

그 후에 프랑켄 중부와 고지의 경제 조언자 겸 바이에른 주 정부의 경제장관(1945~46), 통화 신용 조언 위원회의 회장(1947~48), 미국-영국 점령지구를 위한 경제회의 의장(1948~49)를 지내왔다. 1948년 말 에르하르트가 앞선 여름을 연구한 화폐 개혁들이 배급과 다른 상업적 제한의 폐지와 함께 짝을 이루고, 이미 쇠약한 독일 경제를 지탱하였다.

사회적 시장경제 (라인 강의 기적)[편집]

1949년 콘라트 아데나워 정부의 경제장관으로서 독일의 전후 경제 개혁과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다음 세월 동안에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라인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독일의 철학자발터 오이켄이 최초로 주창한 이 사상은 시장경제에 따른 자유경쟁을 지향하지만, 사회적 질서의 형성 및 유지에 있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기초를 둔 에르하르트의 체계는 주택, 농업, 사회 계획들을 위한 특별 설비들을 포함하였다.

총리 재임[편집]

1957년 연방 정부의 부총리에 임명되었고, 아데나워 총리가 1963년 10월에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총리 자리에 올랐다.

에르하르트의 정부는 미온적인 외교 관계들과 예산 부족에 의하여 위기에 처해졌다. 1966년 여름에 근소한 불경기의 책임에 세금을 상승하기로 결정하자, 내각의 장관들이 탈퇴하는 원인을 가져왔으며, 그해 말에 그는 사임하여야 했다.

1967년 기독교 민주연합의 명예적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1977년 5월 5일 에서 사망하였다.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콘라트 아데나워
제2대 독일연방공화국 총리
1963년 10월 16일 - 1966년 12월 1일
후 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