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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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甑山道)는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의 도를 뜻하며, 강증산을 교조로 여기는 신흥 종교이다.

강증산을 천지만물의 주재자인 상제(上帝)로, 증산의 아내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정통 후계자인 수부(首婦)로 섬긴다.

증산을 본래 천상의 옥황상제로, 주요 종교의 성자들이 증언한 상제님, 천주님, 미륵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을개벽기에 지상에 내려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상생(相生)의 세상을 여는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였다. 20세기 이후의 역사는 증산의 천지공사 내용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고 한다.

증산도는 증산의 천지공사를 인사(人事)로 집행하는 단체이며, 가을개벽기에 인류를 구원할 의통구호대를 조직하고, 후천선경 문명을 연다. 증산도의 경전은 도전(道典)이며 증산의 행적과 천지공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명칭[편집]

강증산에 대한 호칭[편집]

증산도에서는 강증산을 '증산상제님(甑山上帝)'이라 호칭한다. 천상의 옥경에서 인간으로 내려 오신 상제님인데, 증산이라는 이름으로 왔기 때문이다. 동양문화에서 '상제(上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는 천상의 하느님을 가리키는 공식호칭이었다.

강증산이 강(姜)씨 성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강씨가 가장 오래된 인류의 시원 성이기 때문에, 후천개벽을 맞아 모든 것이 뿌리로 돌아가는 '원시반본'의 섭리를 따라, 강씨 성으로 왔다고 한다.

증산도라고 호칭하는 이유[편집]

증산도에서 '증산'은 강일순의 호인 증산(甑山)을 일컫는 것으로, 증산도는 '증산'의 '도'라는 뜻이다. 증산도는 우주의 이법(理法)이 큰 변혁을 맞이하는 가을개벽의 때에 직접 인간으로 강세하여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한 증산상제의 가르침을 말한다. 또한 증산상제과 태모 고수부의 가르침을 받들고 실천하는 신앙단체를 동시에 지칭한다.

'증'은 시루증자로 쌀을 익혀 떡을 만드는 시루처럼, 지금까지 모든 인류 문화를 거두어 성숙시키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증산교라 하지 않고 '증산도'라 부르는 것은 천상의 상제님이 직접 내려와 이제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도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1]

역사[편집]

특징[편집]

증산도는 증산이 세계종교사의 운로를 결정한 '도운(道運) 공사'에 의해서 탄생하였다. 증산은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증산도 도전 5:356)고 하며 3번의 변화과정을 거치게 됨을 암시했다.

증산은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증산도 도전 4:32)고 했다. 그와 같이 도운의 초창기에는 수많은 교단이 난립했다.

도운의 3번째 부흥기에는 증산의 언행이 최종적으로 성편되면서 상제님 도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어, 참법의 기틀의 열리게 되었다.

성립[편집]

증산도는 증산상제가 탄강한 1871년(신미년)을 도기(道紀) 원년으로 잡고 있다. 증산도의 시작은 증산의 인간 세상에 내려오면서부터 시작함을 의미한다. 1901년(도기 31년)부터 천지공사를 봄에 김형렬 성도를 비롯한 김자현, 김갑칠, 백남신, 신원일, 김광찬 성도 등이 천지공사에 수종을 들었고, 1907년(도기 37년)에는 차경석, 김경학, 문공신, 안내성, 이치복 성도 등이 참여한다. 증산의 천지공사는 당대에 많은 소문이 나서 이토 히로부미도 증산을 만나고 싶어할 정도였다.[2] 심지어는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그의 행적이 보인다.[3]

제1 부흥기[편집]

증산이 1909년(己酉) 주요 성도들의 생각과 관계없이 갑자기 어천(御天)하면서, 성도들은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다 증산 사후 2년 뒤(1911년, 辛亥) 증산으로부터 수부(首夫) 책봉을 받았던 고판례가 상제님 성탄치성 후에 대도통을 받고, 생전의 증산과 같은 신권을 얻고 대권능을 자유로 쓰고 신이한 기적과 명철한 지혜를 나타내었다.

이해 10월에 정읍 대흥리 포정소 문을 열고 도창개창을 선언했다. 이로부터 증산의 옛 제자들이 모여 포교를 시작했다. 그 후 3년 만에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와 경상남도와 서남해의 모든 섬에 태을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게 된다. 이때 교명을 뭘로 하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고 수부(首婦)는 "천하를 통일하는 도(道)인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 후일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면 알게 되리라."(증산도 도전 11:29)라고 하였다. 이로부터 '선도교(仙道敎)', 혹은 태을주의 앞 구절을 따서 '훔치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차경석 성도가 고수부를 배반하고 도권을 장악했다. 이에 고수부는 차경석과 결별하고 김제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로 갔다. 이후 차경석 성도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삽시간에 엄청난 수의 신도를 포교하였다. 일제 시대의 최대의 종파로 성장하면서 차천자(天子)로 불렸다.[4] 한 때 총독부 추산 600만에 육박하기도 했다. 보천교의 고위 간부였던 청음 이상호는 보천교주 차경석과 사이가 벌어지자 빠져나와 '동화교'를 세웠다. 이상호는 주요 성도들을 면담하여 대순전경을 간행하고(1929년) 고수부를 모시고자 했다.

보천교가 민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며 큰 세를 자랑하자, 일제는 민족종교를 독립운동으로 간주하여 극심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36년 차경석 성도가 사망하면서 보천교는 해체되었다. 1933년 고수부는 오성산 도장에 은거하다가, 1935년 56세로 천상으로 떠난다.

제2 부흥기[편집]

보천교를 신앙하던 안병욱(安炳彧) 성도의 아들이었던 안운산은 1945년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포교에 나선다. 이 때 대순전경을 간행한 이상호와 손잡고 증산교라는 이름으로 포교했다. 안운산은 증산교 5방주 조직의 수주(水主)로서 짧은 시간에 수십만의 신도를 포교한 총사수였다. 6.25전쟁이 나면서 안운산은 '현상태 유지'를 선언하고 은신하였다.

제3 부흥기[편집]

이후 1974년 안운산 종도사는 아들 안경전 종정과 함께 대전를 중심으로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증산교 신도들이 안운산 종도사를 부정하면서 별도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안운산 종도사는 초종교를 표방하는 진리성격에 따라 기존의 '증산교'에서 '증산도'로 개칭한다.

안경전 종정이 1981년 《증산도의 진리》를 출간하면서 증산도의 교리 체계가 확립되었다.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포교에 전력하여 80년대 말에는 전국 주요 대학에 "증산도우회"(뒤에 "증산도학생회"로 개칭)라는 이름으로 증산도 동아리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1983년에 "이것이 개벽이다"를 출간하였으며, 1984년에는 증산도내의 교육기관인 '증산도대학교'를 출범한다.

1992년에는 기존의 강증산의 행적과 언행을 담은 경전들과 신규 답사를 통하여 증산도의 통일 경전인 증산도 도전(道典)을 출간하면서 신앙 대중화를 선언하였다.(1992년 초판, 2002년 개정신판 발행) 나아가 도전 개정신판을 6개 국어(영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1998년에 상생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증산도 사상의 정립과 체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5년에는 상생방송(STB)을 개국하여 한문화 중심 채널을 표방하고 한민족 역사, 주역, 정역, 우주변화원리 등의 방송을 통해 동양문화를 전한다. 국내 150여개 도장과 해외 20여개 도장이 있으며, 본부는 대전에 있으며 현재 전 세계로 증산도의 진리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경전[편집]

증산도의 경전은 "도전(道典)"이다. 도전은 증산상제과 태모 고수부의 생애와 행적, 말씀을 수록하고 있다. 도전은 '도의 법전'이라는 뜻으로, 지금까지 인류의 경전사의 완결판이라고 한다. 안경전 종정은 3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증산의 행적을 답사하고, 증산을 수종한 성도들과 그 후손들의 증언을 채록했다. 철저한 고증을 거쳐 초기에 남겨진 기록의 과오를 바로 잡았다. 전체 1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2년에 도전 초판이 간행되고, 2003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현재 세계 주요 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외에 '증산도의 진리를 '교전(敎典)'으로 삼고 있다. 1981년 출간된 '증산도의 진리'는 증산상제의 강세와 우주관, 신관, 천지공사 및 종통의 전수, 신앙문화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본 이념[편집]

증산도의 핵심 가르침(宗旨)은 '후천개벽,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이다. 이 가르침들은 우주1년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의 정신, 즉 후천개벽 또는 가을개벽의 정신에 근본을 두고 있다. 자연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원리로, 동서양 문화를 통일하여 후천을 여는 원리가 된다. 또한 후천인류의 새로운 삶의 원리이다.

  • 후천개벽(後天開闢, The great opening of the Later Heaven): 천도교의 교리를 모방하였다. 우주만물은 매 순간 생명을 열어가는 개벽운동으로 존재한다. 가장 미시적인 입자부터 우주도 낳고, 자라고, 거두고, 휴식하는 "(生), (長), (斂), (藏)"의 4단계 변화를 통해 존재한다. 지구에 1년이 있듯이 우주에도 12만 9600년을 주기로 하는 우주 1년이 있는데, 우리가 사는 때는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때에는 우주의 절대자 하느님(상제님)이 인간으로 강세하는데, 강증산이 인간으로 온 상제님이라고 한다. 후천개벽이란 봄여름의 선천이 문닫고, 가을겨울의 후천이 열리는 개벽으로, 자연계의 대격변을 동반한다. 동서양의 수많은 종말론은 이것을 이야기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 원시반본(原始返本, Seeking out the beginning and returning to the origin): 우주의 가을시대를 맞아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이 생명의 근원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문자적으로는 '시원(始原)의 근본(뿌리)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가을의 통일 정신을 의미한다. 원시반본은 보은을 통해 이루어지며 실천적인 면에서는 해원과 상생을 통해 성취된다.
  • 보은(報恩, Requital of benevolence): 보은이란 덕을 베풀어 준 사람에게, 또 자기의 근본에 대해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인간 삶의 제1도덕 이념이 보은이다. 이 세상에 근본 없이 생겨난 사람은 없다. 넓게는 천지의 은혜에, 가까이는 부모와 조상 스승의 은혜에 보은함으로써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원시반본을 성취할 수 있다.
  • 해원(解寃, Resolution of bitterness and grief): 해원이란 뭇 생명의 원과 한을 끌러낸다는 뜻이다. 해원이 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생명의 본래 모습을 회복할 수 없다. 선천 역사는 원한의 확대사, 원한의 축적사다. 성차별, 인종차별, 신분격차, 빈부격차, 전쟁과 폭력 등으로 수수천년 동안 누적된 원한을 모두 풀어야, 상생의 새 세상을 열 수 있다.
  • 상생(相生, Mutual life-saving, mutual life-bettering): 상생은 '생명을 살리고 서로를 잘되게 한다'는 실천 이념으로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환경 파괴, 민족 문제, 최후의 이념 대결 등 모든 갈등 구조를 끌러낼 수 있는 생명의 대도 사상이다. 진정한 상생은 반드시 후천개벽이 전제되고 해원이 함께 실현될 때 이루어진다고 한다.

팔관법(八觀法)[편집]

안경전 종도사는 증산도의 핵심 교리 체계를 팔관법으로 정리하였다.

  • 상제관
  • 우주관
  • 신관
  • 인간관 (혹은 증산도의 근본이념)
  • 천지공사관
  • 구원관
  • 종통관
  • 일꾼관

성격[편집]

한민족의 시원종교인 신교로부터 모셔오던 상제님이 한국에 강세하였는데 그 인물이 증산도의 교조인 강증산 상제님이라 전한다. 일제시대 계연수가 전한 환단고기를 한민족 역사관으로 받아들인다. 우주 법칙으로 김일부의 정역과 한동석의 우주변화의 원리를 인정한다. 무엇이든 한민족을 최고라고 강조하는 역사관이면 자신들의 것인양 홍보하며, 타종교의 교조나 신을 '증산상제가 보낸 일꾼'으로 규정하여 마찰을 빚기도 한다. 타종교의 신이나 교조도 증산상제가 보낸 일꾼이라 보기 때문에, 기성종교는 최종적으로 증산도로 귀착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각 종교나 문화권의 여러 예언서를 모두 증산도적 관점으로 풀이한다. 1999년 이전에는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또한 개벽 정보로 활용하였으며, 파티마의 예언 등 흥미꺼리가 되는 모든 소재를 자의로 해석하여 이용하였다.

증산도에서는 21세기 현재를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하추교역기라고 말한다. 하추교역기는 자연과 문명 그리고 인간이 모두 개벽하는 시기로서 완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말한다. 포교의 수단으로서, 태을주외 7가지 주문을 통하여 건강과 영성계발을 강조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주문의 힘으로 인간의 마음과 영성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주문을 거듭하여 외우는 수행을 매우 강조한다. 이것이 태을주가 여타의 주문이나 만트라, 요가나 기수련 등과는 차별화되는 것이라 한다 . 대순진리회와 같은 증산계열의 종교이다.

참고자료[편집]

  • 증산도 도전편찬위원회, 《증산도 도전(道典)》, 2003년
  • 안운산, 《천지의 도, 춘생추살》, 2007년
  • 안경전, 《증산도의 진리》, 2002년
  • 안경전, 《개벽실제상황》, 2005년
  • 안경전, 《이것이 개벽이다》, 2010년
  • 안경전, 《증산도 대도문답》, 2003년
  • 안경전, 《관통증산도》, 1990년
  • 증산도전국청년신도연합회,《대순진리회의 비극》, 2002년

주석[편집]

  1. 증산도에서는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증산도 도전의 초판 간행사에는 "증산도는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증산도를 보는 모든 명제의 대전제이다. 증산도를 선천종교의 한 범주로 인식하는 잘못된 시각에서부터 증산도를 보는 모든 왜곡이 시작된다. 증산 상제님의 대도 세계를 참되게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증산도는 선천 종교문화의 한계를 극복한 초종교다. 종교문화의 범주를 넘어서서 인류문화를 총체적으로 개벽한 인간의 생활문화의 대도이다."(증산도 도전 초판 간행사)고 기술되어 있다.
  2. 실제로 증산은 이토 히로부미를 만난 일이 있다. "그가 일찍부터 상제님의 성예(聲譽)를 접하고 여러 번 뵙기를 청하거늘 기유년 봄에 상제님께서 형렬을 데리고 친히 통감부를 찾으시니라. 상제님께서 형렬과 함께 안내를 받아 통감의 집무실에 드시니 이등박문이 상제님의 용안을 뵙자마자 정신을 잃고 고꾸라지니라.(후략)"(증산도 도전 5:365)
  3. 백범일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그러할 즈음에 사방요언괴설(四方謠言怪說: 사방의 뜬소문과 이상한 말)이 분(紛: 어지러움)한데, 어디서는 이인(異人: 이상한 사람)이 나서 바다에 떠다니는 화륜선(火輪船)을 못 가게 딱 붙여놓고 세금을 내어야 놓아보낸다는 둥, 불원(不遠)에 정도령이 계룡산 도읍을 하고 이조국가는 없어질 터이니 밭은목에 가서 살아야 제2세 양반이 된다고, 아무개는 계룡산으로 이사를 하였느니 하는 중이라. …"(직해본, 집문당) 이 문구는 1903년 늦여름 증산이 군산바닷가 가서 본 공사로 해석된다.(증산도 도전 5:37)
  4. 박종렬, 《차천자의 꿈》, 2002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