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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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 황후(일본어: 神功皇后, 진구코고, 신공황후), 오키나가타라시노히메미코토(息長足姬尊, 170년 - 270년)는, 가이카 천황(開化天皇)의 증손이며, 츄아이 천황(仲哀天皇)의 황후이다. 오진 천황(應神天皇)의 어머니로 201년~269년간 섭정을 하였다고 전한다. 연대에 대하여는 백제왕력을 기준으로 셈하여 120년을 더하면 321년~389년간 섭정하였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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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시대
진구 황후의 섭정 시기는, 중국의 삼국지에 기록된 히미코(卑彌呼)의 시대와 비슷하며 일본 서기에도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기록되면서 야마토조정(일본어: 大和朝廷)과 히미코를 관련지으려는 의도로 전승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여기는 설도 있다. 또한 이 시대는 장기간에 걸쳐 일본의 천황이 공석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천황이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다.
진구 황후를 히미코와 같은 무녀왕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조에 나오는 히미코는 172년 신라에 사신을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진구 황후와 히미코를 동일화시킨 것은 일본서기 저자들이 일부러 기록을 2갑자 뒤로 되돌린 이주갑인상(二周甲引上)의 결과로 사실의 조작인 것이다.
[편집] 삼한 정벌설
일본 서기에 의하면 오진 천황을 임신한 채로 한반도에 출병하여 신라을 정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00년) 신라왕은 일본군이 도착하자 스스로 결박하고 항복하였고 말과 마구를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이것으로 말이 신라로부터 일본에 전해졌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2] 배에 돌을 대어 아이의 출산을 늦추었고 일본에 돌아가 치쿠시에서 오진 천황을 출산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의 어느 역사책에도 일본의 한반도 남부 경영에 대한 사실이 묘사되지 않은 점에 근거하여 일본의 삼한 정벌설을 후세의 조작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진구 황후를 실재의 인물로 여겨 추앙했으나, 세계 대전 이후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고 있다.
[편집] 화폐
[편집]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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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토 정권 이전 | 진무 - 스이제이 - 안네이 - 이토쿠 - 고쇼 - 고안 - 고레이 - 고겐 - 가이카 - 스진 - 스이닌 - 게이코 - 세이무 - 주아이 - (진구 황후) | ||||
| 야마토 시대 | 오진 - 닌토쿠 - 리추 - 한제이 - 인교 - 안코 - 유랴쿠 - 세이네이 - 겐조 - 닌켄 - 부레쓰 - 게이타이 - 안칸 - 센카 | ||||
| 아스카 시대 | 긴메이 - 비다쓰 - 요메이 - 스슌 - 스이코 - 조메이 - 고교쿠 - 고토쿠 - 사이메이 - 덴지 - 고분 - 덴무 - 지토 - 몬무 - 겐메이 | ||||
| 나라 시대 | 겐쇼 - 쇼무 - 고켄 - 준닌 - 쇼토쿠 - 고닌 | ||||
| 헤이안 시대 | 간무 - 헤이제이 - 사가 - 준나 - 닌묘 - 몬토쿠 - 세이와 - 요제이 - 고코 - 우다 - 다이고 - 스자쿠 - 무라카미 - 레이제이 - 엔유 - 가잔 - 이치조 - 산조 - 고이치조 - 고스자쿠 - 고레이제이 - 고산조 - 시라카와 - 호리카와 - 도바 - 스토쿠 - 고노에 - 고시라카와 - 니조 - 로쿠조 - 다카쿠라 - 안토쿠 - 고토바 | ||||
| 가마쿠라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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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로마치 시대 | 고무라카미 - 조케이 - 고카메야마 - 고코마쓰 - 쇼코 - 고하나조노 - 고쓰치미카도 - 고카시와바라 - 고나라 - 오기마치 - 고요제이 | ||||
| 에도 시대 | 고미즈노오 - 메이쇼 - 고코묘 - 고사이 - 레이겐 - 히가시야마 - 나카미카도 - 사쿠라마치 - 모모조노 - 고사쿠라마치 - 고모모조노 - 고카쿠 - 닌코 - 고메이 | ||||
| 근대 이후 | 메이지 - 다이쇼 - 쇼와 - 아키히토 | ||||
| ※ 녹색 글씨는 여성 천황(황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