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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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황후 견씨(文昭皇后 甄氏, 182년 ~ 221년)[1]는 중국 삼국시대 의 초대 세조 문황제(世祖 文皇帝) 조비(曹丕)의 정비로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황후가 되었다. 상채현 현령 견일(甄逸)의 딸로써 중산군 무극현(하북성 장가구 부근)의 태생이다. 견후 또는 견씨라고도 부르며, 일본식 표현으로 견희(甄姬)라고도 한다. 3남5녀 중의 막내딸로 오빠들의 이름은 예(豫), 엄(嚴), 요(堯)이고 언니들은 강(姜), 탈(脫), 도(道), 영(榮)이다. 황후 자신의 이름은 복(宓), 다른 설에는 낙(洛)이라는 말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근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2]

생애[편집]

처음에는 원소의 차남·원희의 아내였지만 조조가 기주를 공격했을 때(하북 쟁탈전)에 조비는 먼저 원소의 저택을 기습했다. 그때 견씨를 본뒤 처음으로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조비에게 총애를 받아 아들 조예와 딸 동향공주를 낳았다. 그러나 조비의 총애는 후에 곽귀인(후의 문덕황후)나 이귀인, 음귀인으로 돌아가고, 견후는 소외되었다. 또한 후한헌제의 두 명의 딸들이 입궁한 적도 있었다. 이에 비탄한 견황후는 조비에 대해서 원망의 말을 말했다. 이 행동이 조비에게 화를 나게 하여 황초(黃初) 2년 6월에 자결 명령을 받았다.

위지》(魏志) 문제기의 기록에 따르면 견황후가 자살 명령을 받은 다음날 일식이 일어났다. 제관은 태위(太尉)를 파면하듯이 상주했지만, 조비는 “천변지이는 나라를 치료하는 사람에게의 견책이다. 어째서 자기보다 하위의 사람에게 책임을 물리는가”라고 해서 탄핵을 그만두게 했다.

조비와 견황후의 아들인 아들·조예(曹叡)는 황제 즉위 후에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하고 황후로 임명해서 “그 영지에 의해서 세상을 계몽했다”는 의미를 담아 (昭)라는 시호을 주고 아버지의 시호인 문(文) 자를 붙여 문소황후(文昭皇后)로 정하였다. 또한 황태후의 일족에게 후대를 주어 견가의 남성을 제후에 내세웠다. 그들의 가계는 대대로 이어져서 후의 팔왕의 난 즈음에도 난을 피해서 혈맥을 유지했다.

후대의 사서에서 견황후의 죽음은 곽황후의 음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패사의 종류에서는 “조비가 기운이 없으면 곽황후는 ‘기운이 나지 않는 것은 견황후가 저주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중상 모략했다. 조비는 격해서 관심이 희미해진 견황후에게 자살을 명했다.”라고 전하는 것도 있다. 《한진춘추》(漢晉春秋)에 따르면 자살 명령을 받은 견황후의 시체를 곽황후는 그녀가 정돈한 머리카락을 긁어 어지럽히고 그녀의 입에는 쌀겨를 담아서 관에도 넣지 못하고 매장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비가 자주 간언이나 의견의 불일치에 화내고 처벌을 명했던 것이 《위지》 제전에 나오므로 “그가 불화를 일으키는 견황후와 말다툼을 하다가 자살을 명했다.”라고 하는 《위지》의 기록에는 신빙성이 있다. 다른 설로는 조비가 다른 여인을 취하자 원망하는 말을 한 것이 조비의 분노를 샀다고도 한다. 조예는 견씨를 황후로 추서하면서 그 일족을 후대하였고 어머니를 투기로 죽게 한 곽황후에 대해서는 처음엔 극진히 대접하다가 235년에 견황후의 죽음에 대한 재수사를 명령하여 당시 태후인 곽황후를 사사하고 곽황후의 목을 벤 다음 궁궐에 효수하였다. 그 후 잘린 곽황후의 목을 들고 조롱하여 머리카락을 긁어 어지럽히고, 그 입에 쌀겨를 담아 어머니 견씨가 죽을 때와 똑같이 매장하였다.

낙신부의 전설[편집]

견황후에 관한 유명한 전설은 조비의 남동생인 조식과의 연애담이다. 조비의 동생인 조식은 견씨를 흠모하였으나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론으로는 이 이야기는 조비가 견황후에게 자살을 명한 것, 남동생 등을 푸대접 한 것을 모티브로 하여 패사의 종류로부터 창작된 것일 것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3] 특히 조식의 대표작 “낙신부”(洛神賦)의 모델이 견황후라는 설은 진나라육조 시대부터 이미 원형을 볼 수 있다. 남조에서는 궁체시로 불리는 감미로운 연애시가 유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련 전설이 나타나기 쉬웠다고 추정된다.[4]

주석[편집]

  1. 甄을 '견'으로 읽는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므로 진씨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 후비전(后妃傳)
  3. 후비전(后妃傳)
  4. 후비전(后妃傳)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