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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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李儒, 136년 이전[1] ~ ?)는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문우(文優)[2]이며 사례(司隷) 좌풍익(左馮翊) 합양현(郃陽縣) 사람이다.[2]

목차

생애 [편집]

이름 이유(李儒)
시대 후한
생몰 영화 원년(136)이전 ~ ?
문우(文優)
본관 · 출신 사례 좌풍익 합양현
관직 박사(博士)[2][3] → 낭중령(郞中令)[4]
→ 시중(侍中)?[3]〔헌제〕
작위
소속 영제소제헌제

박사 이유[2] [편집]

이유는 박사(博士)로 징소(徵召 : 특채로 중앙 정부에 임용되는 것)되었다.

광화(光和) 7년(184), 거록(鉅鹿) 사람 장각(張角)이 황건적(黃巾賊)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켰다. 합양 사람 곽가(郭家) 또한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켜 성과 관청을 불태웠는데, 합양령(郃陽令) 조전(曹全)은 곽가의 난을 진압하는 한편 현의 학자인 이유 · 난규(欒規) · 정인(程寅)을 조정에 천거하여 각기 작위를 받게 하였다. 이에 이유는 중평(中平) 2년(185) 10월 병진일(丙辰日), 하동(河東) 사람 기무(岐茂) · 현삼로(縣三老) 상량(商量) · 향삼로(鄕三老) 사마집(司馬集) 등과 함께 조전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소제 시해[4] [편집]

초평(初平) 원년(190),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동탁(董卓)은 홍농왕(弘農王) 유변(劉辯)의 낭중령(郞中令)인 이유로 하여금 유변을 독살하도록 하였다. 이유는 독약을 유변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이 약을 드시면 병환이 낫게 될 것입니다.

유변이 대답하였다.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로구나!

유변은 먹으려 하지 않았으나, 이유가 억지로 권하자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먹고 목숨을 끊었다.

동탁 사후[3] [편집]

초평 3년(192), 동탁이 주살된 후 이각(李傕)은 이유를 시중(侍中)으로 천거하였다. 이에 헌제(獻帝)는 조서를 내렸다.

이유는 전에 홍농왕의 낭중령을 지냈는데, 나의 형[5]을 협박하여 죽였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자 이각은 이에 반박하였다.

이유는 동탁의 사주를 받아 자신의 본의로 한 것이니 아니니, 죄 없는 자를 벌할 수 없습니다.


《삼국지연의》 속 이유 [편집]

이유는 동탁의 지시를 받들어 폐위된 소제와 소제의 어머니 하(何)태후에게 짐독(鴆毒)이 든 술을 마시도록 했는데, 거부당하자 하태후를 직접 죽이고 부하에게 소제를 죽이게 했다.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된 후 초평 원년(190년)에, 원소(袁紹)의 숙부인 태부(太傅) 원외(袁隗)를 죽인 일,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낙양(洛陽)을 떠나 장안(長安)으로 천도한 일, 낙양에 불을 지른 일, 단독으로 동탁을 추격하던 조조(曹操)를 물리친 일이 모두 이유의 건의로 인해 실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왕윤(王允)이 보낸 초선(貂蟬) 때문에, 동탁과 여포(呂布) 사이에는 갈등이 깊어지고, 나중에는 동탁이 창을 들고 여포를 쫒아가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이때 이유는 초장왕(楚莊王)의 절영지연(絶纓之宴)의 이야기를 하며, "초선은 수많은 시녀중에 하나지만 여포는 하나 뿐인 장군이다"면서 초선을 여포에게 넘기라고 동탁에게 조언한다.

동탁은 그말이 맞다고 생각하였고, 여포에게 가는 것이 어떻느냐고 초선에게 물었는데, 초선이 칼을 들고 자진할 정도로 초선이 반대를 하여, 이유의 조언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동탁이 죽임을 당한 후 이유는 집안 하인들에게 붙잡혀 처형되고 저자에 목이 내걸렸다.

손견의 옥새와 이유 [편집]

이유는 낙양 궁궐의 궁녀 중 한 명을 살해하고, 그 목에다 옥새를 걸어둔 다음 우물에 던져넣어, 반동탁 연합군이 옥새를 놓고 서로 싸우게도 만들었다.

손견(孫堅)이 불에 타는 낙양의 화재를 진압하려고 옥새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소는 손견에게 옥새를 내놓으라고 강요하지만, 손견은 완강이 거절하게 된다.

이 때문에 원소손견을 미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원소는 유표(劉表)에게 손견을 공격하라고 명령한다. 결국 손견을 죽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유가 궁녀를 죽여 우물속에 던져 놓은 이야기는 모종강의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고, 어떤 평역 삼국지에서는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석 [편집]

  1. 응소(應劭)의 《한관의(漢官儀)》에 따르면, 박사는 50세 이상인 자만 임명되었다. 본문에 언급되는 비석을 세운 시기는 중평(中平) 2년(185년)이므로, 이유는 136년 이전에 태어난 것이 확실하다.
  2. 《조전비(曹全碑)》
  3. 원굉(袁宏), 《후한기(後漢紀)》
  4. 범엽(范曄), 《후한서(後漢書)》 효헌제기(孝獻帝紀)
  5. 유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