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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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령(紀靈, ? ~ 199년 )은 중국 후한 말기 세력가인 원술(袁術)의 휘하 장수이며, 무게 50근이 되는 삼첨도(三尖刀)를 잘 사용하는 명수이다.

[편집] 생애

189년, 동탁(童卓)이 낙양(落陽)에 입성하자, 동탁을 피해서 완(完)으로 거점을 옮겼던 원술을 섬겼다.

196년, 순욱(荀彧)의 「구호탄랑계(驅虎呑狼計)」에 따라 뇌박(雷薄), 진란(陳蘭)을 부장으로 삼고, 자신이 대장이 되어 유비(劉備)를 공격하였다. 이때 서주(徐州)를 지키던 장비(張飛)가 여포(呂布)에게 빼앗기자, 여포군에게 유비를 추격케 하였다.

양홍(楊弘)이 유비를 칠 것을 권유했을 때 대장(大將)이 되어 유비군을 공격하였으나 여포의 중재로 군사를 후퇴하였고, 원술에게 돌아가 여포군과 혼례를 맺을 것을 권하였다.

198년, 서주 전투에서 7개의 부대로 나누어 20만 대군을 주어 여포를 공격케 하였고, 연주자사(兗州刺史) 김상(金尙)을 태위(太尉)로 삼아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게 하였으나 거절하여 김상을 죽이고 자신이 칠로도구응사(七路導救應飼)로 임명되어 보급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진등(陳登)과 내통하였던 양봉(楊奉)과 한섬(韓暹)이 여포에게 붙어버려 대패하였다.

이때 기령은 여포에게 죽었다.

[편집] 《삼국지연의》에서의 기령

삼국지연의》에서의 기령은 196년, 유비를 공격하였을 때 대장이 되어 참전한다. 이때 관우(關羽)와 일기토를 벌이는데 둘은 호각을 이뤘다고 한다.

199년, 조조(曺操)에게 대패하여 수춘(壽春)이 함락되자, 원술과 함께 원소(袁紹)에게 의지하기 위해 하북(河北)으로 떠나가지만, 유비군의 공격을 받는다. 이때 기령은 장비와 일기토를 겨누나 불과 수합만에 죽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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