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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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섬(韓暹, ? ~ 197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이다.

행적[편집]

195년, 황제인 헌제(獻帝)가 장안을 탈출하여 낙양으로 나아갔다. 황제를 호송하던 양봉(楊奉) · 동승(董承)이각 · 곽사의 연합 공격을 받아 고전하였다. 한때 백파적이었던 양봉은 자신의 친구이자 백파적의 두목인 한섬(韓暹), 이락(李樂), 호재(胡才)등에게 구원 요청을 하였고, 이에 한섬과 이락, 호재는 11월 3일에 이각·곽사를 격파했다. 그러나 헌제 호위군은 11월 13일에 이각 · 곽사에게 대패했다.[1] 헌제는 이 세 백파적의 두목에게 장군호를 주어 정치에 참여하게 했고, 한섬은 정동장군이 되었다. 양봉과 한섬, 동승은 천자를 낙양으로 모시고 갔으며,[2] 크게 굶주리던 중에 장양이 황제에게 식량을 원조해 줘 동맹을 맺었다.[3] 그러나 한섬, 양봉, 동승, 장양은 서로 불화를 겪고 있어, 권세를 다투었고, 건안 원년(196년)에 한섬은 동승을 공격해 동승이 장양에게로 달아났다. 8월, 대장군이 되었고 사례교위를 겸했으며 양봉 · 장양과 함께 가절월을 받았고, 동승과 함께 숙위했다.[1][4]

한섬은 공을 믿고 방자히 행하였으며 정사를 어지럽혀, 동승이 이를 근심하여 조조를 불러들였다.[4] 한편 동소(董昭)가 양봉에게 조조(曹操)와 협력할 것을 권하여 양봉이 표를 올려 조조를 진동장군으로 삼았으나, 조조는 양봉을 속이고 헌제를 자기 영역 내의 허로 옮겨버렸다. 양봉과 한섬은 이를 저지하나 실패하였고, 양봉과 한섬은 실망하여 정릉 일대를 노략했다. 그 틈을 타 조조가 양봉의 본거지인 양을 함몰하자, 한섬과 양봉은 갈 곳을 잃어 원술(袁術)을 섬긴다.[5][6][4] 이후 조조가 장악한 조정에서 여포에게 내려온 조서를 보면 공손찬, 원술, 양봉과 함께 체포 대상으로 지목되어 현상금이 걸렸다.[7]

197년, 원술이 황제로 자칭하였을 때, 여포(呂布)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진등(陳登)의 권유로 양봉과 함께 원술을 배반하여 여포의 장수가 되었다.[8] 그 후, 양봉과 함께 서주와 양주에서 노략을 일삼았으나, 양봉이 유비(劉備)에게 고립당하자 병주(幷州)로 도망치려하다가 장선(張宣)에게 살해당했다.[9][4][10]

《삼국지연의》에서의 한섬[편집]

196년, 낙양 전투에서 이락(李樂)과 함께 이각(李傕), 곽사(郭汜)와 전투를 치른 뒤 당시 헌제(劉協)를 호위하던 양봉(楊奉)에게로 합류해 장안(長安)을 탈출한 헌제를 호위하며 정동장군(征東將軍)이 되었다.

조조(曺操)가 헌제를 보호하러 오자 양봉과 함께 이를 막으려다가 크게 패배해 원술(袁術)에게 의탁하고 후에 원술의 여포 토벌전에 종군하다가 진등(陳登)의 계략으로 원술을 배반하고 여포(呂布)의 부하로 들어간다.

이때, 여포가 진규(陳珪)에게 양봉과 한섬을 가까이 두고싶다는 말을 꺼내었을 때 진규는 “산동에 보내어 공격케하면 1년만에 산동을 장군께 바칠 것입니다. ” 라고 하였고, 한섬은 양봉과 함께 산동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서주 인근에서 양봉과 약탈을 벌이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에게 죽었다.

주석[편집]

  1. 범엽: 《후한서》 권9 효헌제기
  2. 진수: 《삼국지》 권6 동이원유전
  3. 위와 같음, 권10 순욱순유가후전
  4. 범엽: 《후한서》 권72 동탁전
  5. 진수: 《삼국지》 권14 정곽동유장유전
  6. 위와 같음, 권1 무제기
  7. 영웅기 (진수의 《삼국지》 권7 여포장홍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8. 위와 같음, 권7 여포장홍전
  9. 위와 같음, 권32 선주전
  10. 영웅기 (진수의 《삼국지》 권1 무제기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