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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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위연(魏延)
시대 후한 ~ 삼국 시대
생몰 175년? ~ 234년
문장(文長)
본관 · 출신 형주 의양군
관직 아문장군(牙門將軍)〔유비〕
→독한중(督漢中) · 진원장군(鎭遠將軍)
· 영(領) 한중태수(漢中太守)〔유비〕
→진북장군(鎭北將軍)〔유비〕
→독전부(督前部) · 영(領) 승상사마(丞相司馬)
· 양주자사(凉州刺史) 진북장군(鎭北將軍)〔유선〕
→전군사(前軍師) ·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 가절(假節)〔유선〕
작위 도정후(都亭侯)
→남정후(南鄭侯)
소속 유비유선

위연(魏延, ? ~ 234년)은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촉한의 장수로, 문장(文長)이며 형주(荊州) 의양군(義陽郡)사람이다.

생애[편집]

유비(劉備)가 익주를 공략할 때 부곡(장)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아문장군이 되었다. 유비가 한중왕을 칭하고, 위연을 독한중·진원장군으로 임명하고 한중태수를 겸직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륜있는 장비(張飛)가 한중을 맡을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유비는 위연에게,

그대가 지금 맡은 중임을 어떻게 해낼 것이오?

하고 묻자, 위연은,

조조(曹操)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온다면 왕을 위해 그를 막을 것이고, 부장이 인솔하는 10만 명을 이르게 한다면 왕을 위해 그들을 섬멸할 것입니다.

라 하였다. 위연은 용맹하고 사졸을 잘 양성했다. 그러나 자부심이 강하고 오만하여 사람들의 꺼림을 받았으며, 다만 양의(楊儀)만이 위연을 용납하지 않아 서로 불과 물 같이 불화했다.

227년, 제갈량(諸葛亮)이 한중에 주둔하면서 독전부로 삼고 승상사마, 양주자사로 임명했다. 230년, 오의(吳懿)와 함께 위의 후장군 비요(費曜), 옹주자사 곽회(郭淮)와 양계에서 싸워 대파해, 전군사·정서대장군·가절에 임명되고 남정후로 봉해졌다. 위연은 제갈량을 겁쟁이라고 말하며 그가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게 한다며 늘 불만을 하였다. 《삼국지》의 주석으로 인용된 어환의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의 북벌 당시, 하후무(夏候楙)가 장안(長安)을 수비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겁이 많고 지략이 없다며 자오곡(子午谷)을 통해 장안을 침공하자는 계책을 내었으나 제갈량은 이를 위험하다고 여겨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229년에는 거기장군 유염과 불화를 빚어, 유염이 송환되는 단초가 되었다.

제갈량이 위독해지자, 양의, 비의(費禕), 강유(姜維)를 불러 자신이 죽은 뒤 철수할 것을 명하고, 위연은 그 뒤를 끊게 하며, 혹시 위연이 따르지 않아도 출발하도록 명했다. 과연 제갈량이 죽고 군대가 철수하게 되어 비의의 방문을 받자, 양의를 따르기 싫다는 핑계를 대며 철수를 거부했다.

그러나 군대는 철수했고, 홀로 남겨진 위연은 대노하여 자신이 이끌던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강행군으로써 본세력을 앞지른 후 길을 불태워 본진이 지나지 못하게 하여. 촉군 본대를 타지에서 전멸시킬 뻔한 만행을 저지른다. 거기에 위연은 양의가 모반을 일으켰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고, 이어서 양의도 반박하는 상소를 올린다.

촉 조정은 제갈량의 명령 대행자 중 한 명인 양의비의강유 등이 양의를 보증하자 위연의 반란을 파악하고, 장완(蔣琬)이 직접 토벌군을 이끌고 위연을 토벌하러 나섰으며 간신히 길을 만든 촉군 본대와 합류한다.

왕평(王平)은 위연과 마주치자 위연의 군사들을 향해 '공(제갈량)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돼 아직 그 육신에 온기가 남아있는데 너희들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꾸짖자 위연의 군사들은 위연의 잘못을 깨닫고 뿔뿔이 흩어져버려 위연은 졸지에 혼자가 되고 자식들과 달아나다 마대(馬岱)에 의해 참수되며 최후를 맞는다.[1]

《삼국지연의》[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를 섬긴 모든 이들 중 유일하게 삼국지 연의의 피해자이며 그를 반골(反骨)상의 장수로 만들어놓았다. 처음엔 형주목 유표(劉表) 휘하에 있었고, 유표 사후 형주를 물려받은 유종(劉琮)이 조조에게 항복하려하자 이에 반발하여 대장 문빙(文聘)과 크게 싸우고 장사태수 한현(韓玄)에게 간다. 유비와의 전투에서 돌아온 황충(黃忠)이 관우(關羽)를 살려주었다는 이유로 역모를 꾀한다며 한현황충을 죽이려 하자, 이에 분노한 위연이 한현을 베어 죽이고 유비에게 귀순한다. 이 때, 제갈량유비에게,

위연은 반골의 상입니다. 게다가 자신이 모시던 군주를 죽이고 왔으니 중용하지 마십시오.

라고 진언하였으나 유비는 위연을 받아들인다. 이후 손권(孫權)이 촉의 사신에게,

위연은 용맹하긴 하나 반골의 상이오. 후에 반드시 큰일을 저지를 것이오.

라고 하는 등 정사에 나오지 않는 '반골의 상'에 관한 내용이 첨가되어 있다. '반골의 상'이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이나 이것은 위연의 오만하고 남들이 기피하는 성격과 훗날의 반란에 대한 복선이며 그가 세웠다는 공들도 대부분 창작이다.

인물평[편집]

양희가 쓴 계한보신찬에서는 위연을 다음과 같이 찬한다.

문장은 강직하고 용맹하며, 어려움에 임하여 명령을 받아 외적을 막아 싸우고 국경을 지켰다. 그러나 협력하지도 않았고, 조화를 이루지도 않았으며, 절개를 잊고 반란의 뜻을 언급했다. 그래서 최후의 행동은 증오를 받았고, 최초의 공적은 아낌을 받았는데, 이것은 실제로 그의 본성이었다.

진수는 《삼국지》유팽요이위양유전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전략)… 위연은 용략으로써 임용되었고, 양의는 …(중략)… . 이들(유봉, 팽양, 요입, 이엄, 위연, 양의, 유염)은 모두 조정에서 존중을 받았다. 그들의 거동을 관찰하고, 그들의 언행이 예법에 부합되는지를 살펴보면, 그들이 초래한 재앙과 허물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주석[편집]

  1. 《삼국지》촉서 위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