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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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費曜, ? ~ ?)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장수이다.

행적[편집]

218년, 양주의 노수, 호이의 건기첩, 치원다 등이 모반하여 양주가 소란해지자, 장기의 후속부대로 하후유와 함께 파견되어 장기 등과 함께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장진 등이 주천 땅에서 모반하자, 조진은 비요 등을 파견하여 이를 격파하고 장진 등을 참수했다.

228년, 제갈량의 제1차 북벌에서는 장합과 함께 제갈량의 선봉 부대를 격파했다. 이해 제갈량이 진창성을 공격하자, 조진의 명령으로 진창성을 구원했다.

231년, 후장군으로써 장합, 대릉, 곽회와 함께 사마의의 지휘를 받아 제갈량을 막으러 출진했다. 사마의의 명령으로 대릉과 함께 군사 4천을 이끌고 상규를 지켰는데, 이곳에서 사마의를 요격하려던 제갈량의 공격을 받아 곽회와 함께 격파당했다.

《삼국지연의》의 비요[편집]

비요(費耀)로 표기된다. 제갈량의 제2차 북벌강유의 계략에 빠져 자진하였다. 비요는 당시 제갈량과 겨루던 조진의 부하 장수로 강유가 가짜 편지를 보내오자 의심하고 조진을 대신하여 5만의 병력을 이끌고 나선다. 퇴로가 차단되고 골짜기 안에 갇힌 채 촉군들이 지른 불에 의하여 병력의 반을 잃고 자진한 후에 나머지 반은 항복하였고 비요는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