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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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덕(龐德, ? ~ 219년)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으로, 자는 영명(令明)이며 옹주(雍州) 남안군(南安郡) 환도현(豲道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마초(馬超)의 부장으로 건안(建安) 7년(202년)에 장기(張旣)의 설득으로 파견되어 종요(鍾繇)와 함께 원상(袁尙)을 공격하였다. 이때 원상의 장수 곽원(郭援)을 죽였다.

건안 16년(211년), 동관(潼關)에서 조조(曹操)와의 싸움에서 활약하였으나 패배하고 장로에게 의탁하나, 잠시 병에걸려 마초가 서촉의 지원군으로 떠날때 한중(漢中)에 남아있었다. 이때, 마초는 유비(劉備)에게 투항하였다.

건안 20년(215년), 조조가 한중을 침략하자 장로(張魯)의 부탁으로 조조와 맞서싸웠는데, 그 때 조조는 방덕의 용맹을 칭송하며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후 가후(賈詡)의 계략에 따라 방덕을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게 된다. 그렇게 붙잡히게 되자 항복하여 상장(上將)이 되어 크게 중용되었다.[1]

조인(曹仁)의 부장이 되어 후음의 반란을 토벌한다.

건안 24년(219년), 관우(關羽)가 조인을 공격하였을때 방덕이 관우의 이마에 화살을 쏘아 맞혀 사람들이 방덕을 백마장군(白馬將軍)이라며 두려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공으로 인하여 대패하였고, 관우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삼국지연의》 속 방덕[편집]

마초에게 꿈 해몽을 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며, 이후에 마초의 부장으로 활약한다.

조조가 한중을 침략하자 장로의 부탁으로 조조와 맞서싸웠다. 그러나 조조의 함정에 걸려 붙잡히자 항복하여 상장(上將)이 되어 크게 중용되었다.

형주 전쟁에서 선봉장으로서 우금(于禁)과 출전하였는데, 자신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어 관을 메어 조조에 대한 충의를 보여준다. 그 후 관우(關羽)와 결사전을 벌여 호각을 이뤘는데 관우의 이마에 화살을 쏘아 맞혀 백마장군이라며 두려워 했다고 한다.[2]

증구천에서 진채를 세웠을때, 수공으로 공격할것을 예상하여 우금에게 미리 대피할 것을 권하였으나 우금은 그 말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언덕 위로 올라가 관우에게 항전하였으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배를타 도주하였으나 주창(周倉)에게 붙잡혀 관우에게 끌려가 처형을 당했다.

가계[편집]

방덕.png

관련 인물[편집]

방유 방회

주석[편집]

  1. 진수: 《삼국지》권18 위서18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二李臧文呂許典二龐閻傳) 중 방덕전
  2. 삼국지 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