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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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견: 11년 전 (Synparaorthodox님) - 주제: 위연의 생년

ip 유저 쓰시는 분의 주장의 근거를 부탁합니다.[편집]

위연이 유표를 섬기다가, 유표 사후 한현 휘하에 들어간 후 유비에 들어갔다는 것은 《삼국지연의》에서 각색된 것입니다. 《삼국지》촉서 위연전의 시작은

위연은 자가 문장이고, 의양군 사람이다. 부곡으로 선주를 수행해 입촉하여 여러 전공이 있어 아문장군으로 옮겼다. 선주가 한중왕이 되어 성도를 다스리자…

로 되어, 유비 이전에 다른 사람을 섬겼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연의 군공은 기록된 바가 많지 않습니다. 한중태수에 임명되긴 했지만, 한중태수로서 무슨 공을 세웠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위의 위연전에 나오는 위연의 군공은,

  • 입촉 때 여러 전공이 있어 아문장군으로 옮겼다.
  • 건흥 5년, 위의 후장군 곽회, 비요와 싸워 이겼다(《삼국지》양희전에 수록된 계한보신찬에 따르면 오의라고도 하는 오일과 공동으로 싸움)

이것 뿐입니다. 그나마도 가장 크게 기록된 전공은 통상 오호장군이라 불리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이 모두 죽은 후에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위연이 전공이 많아 양의만이 시기했다고 하시는데, 위의 위연전에서 서술하는 둘의 불화의 원인은 다릅니다.

위연은 사졸을 양성하기를 잘 했고, 용맹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으며, 또 성정이 긍고하였으므로, 당시 모든 사람들이 피했다. 오직 양의만이 위연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위연은 이를 매우 분히 여겼는데, 마치 물과 불 같았다.

장완을 언급한 것은 제가 비의랑 헷갈렸습니다. 위연전에 따르면 제갈량은 죽기 전에 양의, 비의, 강유에게 퇴각하게 했으므로, 퇴각군은 이들의 공동 지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연은 양의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세 사람의 공동지휘이므로 퇴각을 따라가면 위연도 이 세 사람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 위연이 '내가 누군데, 양의의 지휘를 받아 뒤를 끊을 수 있겠소!'라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양의 혼자 지휘를 명령받은 것은 아니지만, 양의도 지휘관이었습니다.

--Synparaorthodox (토론) 2009년 9월 14일 (월) 16:29 (KST)답변

위연의 생년[편집]

위연은 나이에 관련된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생년을 175년으로 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2년 10월 19일 (금) 23:04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