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나관중(羅貫中, 1330년? ~ 1400년)은 《삼국지 연의》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 원말 명초의 인물로, 관중(貫中)은 자(字)이며 이름은 본(本)이다.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 산서성 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경향에 따라 역사를 소설 형식으로 표현하는 연의를 많이 지었다. 특히, 그의 작품인 《삼국지 연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아시아의 각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삼국지연의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까지 민간의 구전으로 전하던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삼국지통속연의》란 책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또한 《수호전》의 편저에도 관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관중 개인의 삶은 그리 좋은 생을 살지 못하였다. 나관중과 주서는 먼 친척사이로서 명나라가 건국되자 같이 과거를 응시했으나 주서는 급제한 반면 나관중은 탈락했다. 이에 나관중은 계속 과거를 응시했으나 끝내 탈락했다. 결국 나관중은 과거를 포기하고 부친을 따라 산시(山西)성 태원(太原)에서 소금장사를 했으나 장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차집을 자주 드나들며 그곳에서 ‘삼국희곡(三國戲曲)’을 즐겨 들었다. 당시의 ‘삼국희곡’에서는 촉나라의 유비를 정통으로 내세웠으며 주유의 공로 역시 모두 제갈량에게 넘겨졌다. 나관중은 이를 토대로 삼국지연의를 기술하였으며 정사와는 다르게 독자연구를 반복하여 삼국지연의를 기술하였다.[1] 게다가 주서에 대한 맹렬한 질투로 인하여 촉을 좋게 평가한 반면 오나라는 전체적으로 비하했다. 특히 촉나라에서 삼국지연의의 피해자는 오직 위연 한사람뿐이며 나머지는 전부 삼국지 연의의 수혜자인 반면 오나라에서 삼국지연의의 수혜자는 오직 정봉 한사람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다 삼국지연의의 피해자인데 그 정도는 손견이 가장 심한 피해자이다. 손견의 경우 충의지사를 천하의 대역적으로 바꿔놓았다. 손견은 삼국지 연의에서 받은 이익이라고는 오직 원술의 객장이 아닌 독립태수로 나오는 것 하나뿐이며 정사에서 화웅을 쓰러뜨리고 동탁을 공포에 질리게 한 묘사같은 것을 관우에게 넘기고 손견은 화웅이 무서워 도망간 위인, 천하야욕에 눈이 먼 옥새도적 등으로 매우 많이 비하했다.
또한 나관중은 계속 원나라 말기의 혼란기의 반란군 지도자 장사성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 내려오며, 《삼국지 연의》의 적벽대전의 묘사는 주원장과 진우량의 전투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이 밖에 <수당지전> <잔당 오대지 연의> <송 태조 용호 풍운회> <평요전> 등의 희곡과 통속 소설이 전한다.
주석 [편집]
- ↑ http://www.soundofhope.co.kr/bbs/board_view.php?bbs_code=bbsIdx9&bbs_number=60&page=2&keycode=&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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