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
웅진(熊津) 또는 곰나루는 475년부터 538년까지 백제의 수도이다. 지금의 공주시이다. 고구려의 침략으로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서 밀려나 수도를 웅진으로 옮겼다. 성왕은 538년 수도를 다시 사비로 옮겼다.
곰나루 전설 [편집]
백제시대, 공주시의 이름은 웅진(熊津)이다. 한글로 쓰면 곰나루이다.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득한 옛날 한 나무꾼이 강을 건너 연미산(燕尾山)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때, 큰 암곰 한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꾼을 업고 자기가 사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곰은 좋은 음식을 나무꾼에게 많이 가져다주며 나무꾼을 보살폈다. 곰은 사냥을 나갈 때는 꼭 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놓아 나무꾼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세월이 지나 몇 해를 이렇게 살게 되자 곰과 나무꾼의 사이에는 자식 둘이 생겼다. 이제 됐다고 안심한 곰은 어느 하루 사냥을 나갈 때 굴 입구를 돌로 막지 않았다. 이를 본 나무꾼은 굴을 나와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쳤다. 사냥을 나갔던 곰이 돌아왔을 때 나무꾼은 벌써 건너편에 도착해 있었다. 다급한 곰은 두 자식을 나무꾼에게 보여주며 돌아올 것을 애원했으나 나무꾼은 냉정하게 뒤돌아섰다. 이에 상심한 곰은 두 자식과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배가 지날 때마다 풍랑이 일고 변고가 생겨 곰사당을 짓고 곰의 영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1] 공주시에는 현재 공산성이라는 산성이 있는데 원래는 곰나루 지역에 축성된 산성이라 '곰산성'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옮겨 적으면서 소리 나는 대로 공산성(公山城)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 후 '공주'는 공산성이 있다는 이유로 당연 공주(公州)가 되었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공주시는 곰에 얽혀있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단군신화의 예처럼 대한민국에서 곰과 연관되는 대표적인 지역 중의 하나이다.[2]
《주서(周書)》 〈백제전(百濟傳)〉, 《양서(梁書)》 〈백제전〉에도 백제의 수도가 고마(固麻 : 웅진)라 불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주석 [편집]
- ↑ 이병학 기자, “둑길 따라 그리움 흐르고 곳곳 곰 전설 자취”, 《한겨레신문》, 2009년 9월 10일 작성. 2010년 4월 8일 확인.
- ↑ 김운회 동양대 교수, “부여와 곰고을의 사람들”, 《프레시안》, 2008년 11월 3일 작성. 2010년 4월 8일 확인.
| 이 글은 한국사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