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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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광현(大光顯, ? ~ ?)은 발해의 마지막 태자다. 고려사에 따르면 발해왕의 세자다. 대한민국의 태씨(太氏)와 대씨(大氏)는 대광현을 중시조(中始祖)로 본다.

발해거란에 의해 멸망할 즈음에,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장군 신덕(申德),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예(大福譽),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檢校) 개국남(開國男) 박어(朴漁), 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이 그 남은 사람을 거느리고 수만 호가 도망하여 고려로 귀부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후하게 대접하여, 대광현을 왕계(王繼)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종적(宗籍)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또, 원보(元甫)의 벼슬을 받아 백주(白州)를 지키면서 집안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협계 태씨, 영순 태씨의 족보에서는 고려 태조가 그에게 태씨(太氏) 성을 하사했다고 전한다. 남원태씨, 나주태씨, 밀양태씨 모두 그에게서 분파된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망명 시기[편집]

대광현의 망명 시기는 여러 기록들이 하나로 합치하지 않는다. 그 이설들은 다음과 같다.

가족 관계[편집]

고려사고려사절요에서는 대광현이 발해의 세자라고만 전하고 그 부왕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사 태조 세가에 발해가 망한 926년에서 한참 지난 934년에 망명하였다는 기록에 착안하여, 정약용은 저서 발해속고(渤海續考)에서 대광현은 대인선의 세자가 아니고 발해국 멸망 후 유민과 함께 약 10년간 항거하다가 소식이 끊긴 그의 아우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현대에서는 후발해국(後渤海國) 대씨 정권의 세자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고려사절요에서 고려 성종고려 현종 시기에 대도수(大道秀)의 기록이 보이지만, 대광현과의 관계는 알 수 없다. 한국의 태씨 족보에서는 대광현의 아들이라 주장한다.

* 부왕 : 대인선(大諲譔)
* 아들 : 없음
* 형제 : 대화균 (太和鈞), 대원균 (太元鈞)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