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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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신검
後百濟 神劍
후백제의 2대 국왕
재위 935년 11월 15일(음력 10월 17일)~936년 9월 25일(음력 9월 8일)
부왕 견훤
모후 왕후 박씨
이전 왕 견훤
다음 왕 (왕조 멸망) 고려 태조

신검(神劍, ? ~ 936년 9월 25일(음력 9월 8일), 재위: 935년 11월 15일(음력 10월 17일)~936년 9월 25일(음력 9월 8일)은 후백제(後百濟)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왕이다.

생애[편집]

견훤(甄萱)의 맏아들이자 적자(嫡子)인 그는 견훤(甄萱)이 10여 명의 아들 중 넷째 아들이자 서자(庶子)인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전하려고 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두 아우 양검(良劍)·용검(龍劍)의 권유를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에 능환(能奐)을 비롯한 몇몇 후백제(後百濟)의 관료들도 동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935년 (태조(太祖 18년) 견훤(甄萱)을 금산사(金山寺) 유폐하고 이복 서제 금강(金剛)을 죽인 뒤에 후백제(後百濟) 제2대 왕이 되었다.

신검(神劍)은 견훤(甄萱)을 금산사(金山寺)에 가두었는데, 약 3개월 뒤에 견훤(甄萱)은 가까스로 탈출하여 고려(高麗)의 개성(開城)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견훤(甄萱)은 고려(高麗)의 태조(太祖)인 태조(太祖)에게 반역을 꾀한 자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였다. 태조(太祖)는 견훤(甄萱의 요청을 받아들여 936년에 군대(軍隊)를 이끌고 일선군(一善郡) 오늘날의 구미시(龜尾市) 선산읍(善山邑)으로 갔다.

신검(神劍)의 군사(軍事)들이 이에 맞서기 위해 나섰으나, 견훤(甄萱)의 사위였던 박영규(朴英規))가 견훤(甄萱)을 내쫓은 신검(神劍)에게 불만을 품고 고려(高麗)로 귀화하면서 초기부터 전세가 불리해졌다. 게다가 고려(高麗)군 앞에 나타난 견훤(甄萱)을 보자 후백제(後百濟)의 병사들은 대항의 의지를 잃고 말았다. 결국 싸우기도 전에 애술(哀述)을 비롯한 많은 장수(將帥)들이 항복하였고, 신검(神劍)도 황산까지 밀려나자 할 수 없이 항복하였다.

견훤(甄萱)은 신검(神劍)이 아버지인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킨 죄를 벌하여 달라고 태조 왕건(太祖 王建)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반역의 책임이 신검(神劍)을 부추긴 신검(神劍)의 아우 양검(良劍)과 용검(龍劍)이나 능환(能奐) 등에게 있다고 하여 그들에게만 벌을 내렸다. 결국 양검(良劍)과 용검(龍劍) 능환(能奐) 등은 처형당하였으나 신검(神劍)은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러나, 왕건(王建)에게 항복한 이후에 신검(神劍)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신검도 함께 처형을 당했거나 훗날에 죽임을 당했다는 설도 있다.

가계[편집]

  • 조부: 아자개(阿慈介)
  • 조모: 상원부인(上院夫人)
  • 조모: 남원부인(南院夫人)
    • 부왕: 견훤(甄萱 867~936 재위:892/900~935)
    • 모후: 왕후 박씨(王后 朴氏)
      • 본인: 신검(神劍 ? ~936 재위:935~936)
      • 동생: 양검(良劍 ? ~936)
      • 동생: 용검(龍劍 ? ~936)
      • 누이: 국대부인(國大夫人)
      • 매부 : 박영규(朴英規)
    • 백부: 능애(能哀)
    • 백부: 용개(龍蓋)
    • 백부: 보개(寶蓋)
    • 백부: 소개(小蓋)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참고문헌[편집]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왕조(高麗王朝)의 성립(成立)과 호족연합정권(豪族聯合政權)(하현강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77)
  • 후삼국(後三國)의 성립(成立) (박한설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6)
  • 후백제(後百濟) 금강(金剛)에 관하여 (박한설 대구사학 7 8합집 1973
전 대
견훤
제2대 후백제 국왕
935년 - 936년
후 대
-
(왕조 멸망) 고려 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