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아차산 입구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

온달(溫達, ? ~ 590년)은 고구려(高句麗)의 장군이다. 살림이 구차하여 구걸로 모친을 봉양했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다녀서 바보 온달로 불리었다.

뒤에 평원왕(平原王)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 남자를 찾아온 평강공주(平岡公主)와 혼인하고서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해마다 음력 3월 3일(삼짇날)에 열리는 사냥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올렸다. 북주(北周, 557년 ~ 581년)의 무제(武帝)가 요동을 거쳐 고구려에 침입하자 선봉에 나서 승전하여 제1의 전공자가 되고 대형(大兄) 작위를 받았다.

영양왕(嬰陽王) 1년(590년) 신라(新羅)에게 강탈당한 한강 이북 고토를 수복하고자 출전하여 아단성(阿旦城)에서 적병이 쏜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온달전설'은 평민의 신분으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여 부마에 오르고 무장으로 이름을 떨친 온달장군의 인물설화이며 역사상 실존인물을 다루었기 때문에 역사설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영웅전설의 일반적인 구조처럼 온달의 죽음으로써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다. 바보온달로 구전되는 인물전설은 강화도일대와 중부지방에서 주로 전승되며, 갈등구조상 동일 유형으로 파악되는 쫓겨난 딸과 숯구이총각에 얽힌 민담은 전국적인 분포를 이루고 있다

참조 사항[편집]

참고 자료[편집]

바깥고리[편집]